나비움301 격세지감 설2025년 1월 29일. 설날 아침이다. 어린 시절 1970년대였다. 설날 아침이면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설빔으로 갈아입고 새배를 다녔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냈다. 차례는 종갓집부터 시작해 일곱 집 정도를 돌다 보니 마지막 차례를 모시고 나면 날이 어두워졌다. 차례를 모시는 집마다 음식을 다 먹어 설날은 포식하는 날이어ퟭ다. 차례를 모시는 인원도 많아 아이들은 마당에 멍석을 깔아 그 위에서 절을 했다. 객지 나가 있던 가족들도 고향에 돌아오고 온 집안 사람들도 만나 같이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명절 문화도 바뀌고 가족도 결혼하고 분가하여 제사에 참석하는 인원도, 같이 제사를 모시는 사람도 점점 줄었다. 이제 어머니마저 돌아가신지 1년이 지났다. 교회 다니시는 형님.. 2025. 1. 29. 슬픔의 소유와 존재 어릴 때는 울 일도 많았다. 배가 고파도 울고, 배가 아파도 울었다. 무서워서 울고 놀라도 울었다. 싸우다가 맞아서도 울고 억울해도 울었다. 가끔 슬퍼서 울기도 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울면 약하게 보인다. 대체로 아버지들은 자식들이 강하게 자라기를 바란다. 그래서 울지 못하게 했다. 넘어져 다쳐도, 싸우다 맞아도 울음을 참아야 했다. 울다가 아버지한테 들키면 또 맞아야 했다. 울음을 참다 보니 슬픔을 느끼는 감정마저도 무뎌졌다. 에크하르트는 모든 것 즉 물건들, 재산, 지식, 사상뿐만 아니라 의례, 선행까지도 모두 소유와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것들은 그 자체로서는 ‘나쁘지’ 않은데 나쁘게 변한다. 문제는 소유의 대상들에 대한 집착이다. 집착할 때 그 사람의 자유를 해치는 쇠사슬이 .. 2025. 1. 26. 측백나무집을 들고 규합총서에 가다 2025년 1월 24일 금요일. 어제는 꼰대탈출독서모임을 규합총서라는 식당에서 했다. 성학, 광률, 원, 우선, 태숙, 정오, 용완, 수헌, 호식 아홉 명이 참석했다. 병환님은 독감으로 불참했다. ‘꼰대’는 늙은이를 뜻하는 은어다. 학생들은 선생님을 꼰대라고 한다. 늙은이는 나이가 많아 중년이 지난 사람이다. 중년은 마흔 살 안팎이다. 이건 뭔가 잘못됐다. 국어사전편찬위원회에서 평균 수명이 쉰 살일 때 ‘늙은이’와 ‘중년’의 개념을 정리한 것 같다. 식당 이름이 ‘규합총서(閨閤叢書)’라니 특이하다. 규합총서(閨閤叢書)는 1809년 여성실학자이자 서유구의 형수인 빙허각 이씨가 아녀자를 위해 엮은 여성생활백과이다. 이 책에 술을 빚고 음식을 만드는 방법도 들어 있다. 규합은 안방이다. 규(閨)만 해도 안방.. 2025. 1. 25. 도무지 얄따란 세 치 혀뉘라서 가볍다 말할 수 있나좁다란 입 안에서 연출되는 삶물 먹인 종잇장 덧대고 덧댄 죄(罪)의 무게는벼랑 끝 시간 앞에 우릴 세우는데 바로 걷고 있다고 곧은길일까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일까겉이 거칠다고 속조차 그럴까 곧은 저 강(江)도 조만간 모퉁일 만날 테지겉도는 저 수면도 가라앉은 삶을 기억할 테지퍼붓는 한숨에 더 빛날 윤슬의 가치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의 강 의지 하나로 싹 틔우는 지악한 삶무엇으로 세상의 무게 저울질할 수 있을까말 없는 물음표에 다시 던지는 깊은 물음‘도무지’ -『목적어와 외딴섬』(오양옥) ‘도무지’ 도무지는 ‘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의 뜻이며 부정어와 호응해서 쓰이는부사다. 도무지는 도모지(塗貌紙)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도모지(.. 2025. 1. 24. 이전 1 ··· 3 4 5 6 7 8 9 ··· 7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