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박웅현5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읽었다. 저자는 ‘이십여 명의 20, 30대 들과 함께 만나 젊음에 필요한, 아니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말한다. 추석 때 아들과 딸을 만나면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  이 여덟 단어는 다음 한 문장으로 꿸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패러디하여 여러 가지를 말해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르지만 아무도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은 완전하지만 아무도 완전하지 않다. 모든 날씨는 다르지만 어떤 날씨도 다르지 않다. 인생의 모든 길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이지만 어떤 삶의 길도 전인미답은 아니다.  .. 2024. 8. 31.
낯선 도시에 혼자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장 그르니에) 중에서 내가 살아온 동네에서 계속 산다면 나를 아는 가족과 친척, 동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도 버리기가 어렵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고 내가 가진 것으로 부양해야 할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또 이미 수십 년을 살아온 익숙한 도시에서는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도 힘들다. 남루하게 사는 것도 혁명적인 결단과 용기가 없으며 불가능하다. 혼자서 낯선 도시에 간다면 눈치볼 것 없어서 느끼는 자유로움도 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생존하려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말도 통하지 않을 만큼 낯선 도시라면 겸허.. 2024. 3. 15.
사랑일까 내가 좋아하는 매력적인 상대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만큼 그 상대는 내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꼭 관심이 없는 상대가 나를 좋아한다 내가 매력을 못 느끼는 것에 비례해서 상대는 내가 매력적인 모양이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면 그것도 일방적으로 혼이 빠질만큼 좋아하면 어찌 그 앞에서 얼굴이 빨개지지 않으랴, 목소리도 떨리지 않을 수 있으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상대한테라면 멋있게 쿨하고 태연자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유혹하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고 가장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유혹하기란 쉽지 않을까 사랑은 나를 버리게 만든다 그렇게도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던 내가 사랑을 하게 되면 나는 온데간데 없고 철저히 사랑하는 그 상대가 좋아할 만한 일.. 2024. 3. 12.
우연히 마주친 ‘불멸’ 化雲心兮思淑貞(화운심혜사숙정) 구름 마음 되어 순결하자 맹세컨만 洞寂寞兮不見人(동적막혜부견인) 깊은 골 괴괴한 절간 사람은 안 보이네 瑤草芳兮思芬蘊(요초방혜사분온) 꽃 피어 봄 이리 설레니 將奈何兮是靑春(장내하혜시청춘)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660년에 태어나 693년에 죽은 설요(薛瑤)라는 여자가 열다섯에 스님이 되었다가 스물 한 살에 환속하며 남겼다는 시다. 김훈이 『자전거 여행』에서 뒤의 두 구절을 인용한다. 꽃 피어 봄 마음이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그리고,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이것은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이다. 그 충동은 위태롭고 무질서하다. 이를 박웅현이 『책은 도끼다』에서 김훈이 인용한 설요의 시와 김훈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나는 다시 인용의 인용을.. 2024.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