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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5

마음 끝 김소월의 ‘하늘 끝’을 읽는다. 불현듯 집을 나서 산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 부르다가 내가 죽은지 오래 기다리다 선 채로 돌이 돼버린지 오래 한 번씩 느닷없이 마음에 불이 나서 부리나케 미친 개처럼 헐떡이며 산을 넘는다 산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끝나는 곳에 하늘이 끝나는 곳에 끝나지 않는 내 마음은 어디에 2023. 12. 23.
새벽 김소월의 ‘새벽’을 읽는다 낙엽이 발이 숨는 못물가에 우뚝우뚝한 나무 그림자 물빛조차 어슴푸레 떠오르는데, 나 혼자 섰노라, 아직도 아직도, 동녘 하늘은 어두운가. 천인(天人)에도 사랑 눈물, 구름 되어, 외로운 꿈의 베개, 흐렸는가 나의 님이여, 그러나 그러나 고이도 불그스레 물 질려와라 하늘 밟고 저녁에 섰는 구름 반달은 중천에 지샐 때. --------------------------- 밤이 지나면 낮이 오고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을 밤 중에 밤을 지새며 두 눈을 뜨고 새벽을 기다리는 것은 새벽이기를 아침이기를 그야말로 물어본다 못물에게 우뚝우뚝 솟는 나의 사랑을 하늘 밟고 버티는 나의 사랑을 이 어둠 끝나면 동 트는 새벽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2023. 12. 22.
합장(合掌) 김소월의 ‘합장’을 읽는다. ------------------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어와라. 아, 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불 빛에 해작여라, 희미한 하늘 편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운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 하고, 더 안 가고, 길가에 우두커니, 눈 감고 마주 서서, 먼먼 산 절의 절 종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 합장(合掌) 두 손을 모아본다 두 손을 모아서 뭘 하자는 것인가 두 손을 모아 봐라 두 손을 모아 보면 의외로 뜨거운 기운이 모인다 간절한 마음이 모인다 기도를 위해서 합장을 하고 합장을 위해서.. 2023. 12. 20.
불길에야 녹을 눈 김소월의 ‘눈’을 읽는다 ....................................... 새하얀 흰 눈, 가비얍게 밟을 눈, 재 같아서 날릴 듯 꺼질 듯한 눈, 바람엔 흩어져도 불길에야 녹을 눈, 계집의 마음, 님의 마음. ...................................... 소년은 눈을 보며 그 소녀를 생각한다 그 소녀는 하얗다 새하얗다 게다가 또 희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금방 얼룩이 질 것 같다 누군가 아주 가볍게 밟아도 꿈틀 못하고 밟힐 것 같다 재처럼 너무나 미미하여 한 줌 바람에도 흩어져 없어질 것 같다 보일 듯 말 듯 있는 듯 마는 듯한 불씨는 다 날리기 전에 꺼질 듯하다 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먼저 흩어질 그 소녀 그 소녀를 생각하는 소년의 마음은 불길 같아서 그 불길.. 2023.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