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여덟 단어』를 읽었다. 저자는 ‘이십여 명의 20, 30대 들과 함께 만나 젊음에 필요한, 아니 살아가면서 꼭 생각해봐야 하는 여덟 가지 키워드에 대해서’ 말한다. 추석 때 아들과 딸을 만나면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존(自尊), 본질(本質), 고전(古典), 견(見), 현재(現在), 권위(權威), 소통(疏通), 인생(人生).
이 여덟 단어는 다음 한 문장으로 꿸 수 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이 문장을 패러디하여 여러 가지를 말해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르지만 아무도 다르지 않다. 모든 인간은 완전하지만 아무도 완전하지 않다. 모든 날씨는 다르지만 어떤 날씨도 다르지 않다. 인생의 모든 길은 전인미답(前人未踏)이지만 어떤 삶의 길도 전인미답은 아니다.
자존(自尊). 모든 것이 변하니 나도 끊임없이 변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한 순간도 똑같지 않다. 그런데 끊임없이 달라지는 ‘나’를 늘 같은 나의 이름이, 주민등록을 비롯한 모든 법적인 서류와 증거들이 나를 ‘동일’하게 끊임없이 고정시킨다. 변하든 변하지 않든 ‘나’와 가장 밀접한 존재가 ‘나’이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결정적이지 않다. 자신을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치명적이다. 미워하는 자신을 따로 분리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본질(本質). 본질은 진리에 가깝다. 복잡하기보다는 단순하다. 변함보다는 불변에 가깝다. 세상은 늘 변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그 현상에 맞춰 살기는 어렵다. 본질을 생각하면서 잡다하게 불필요한 것들을 줄여야 삶이 명료해지고 쉬워지고 맑아진다.
고전(古典).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 변함을 뚫고 변하지 않은 것이다. 시대에 따라 가치가 변하는데 시간을 이기고 변함없이 읽을 만한 가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시류에 편승하여 얄팍하기만 한 책들은 읽고나면 읽으나마나 하여 남는 것 없이 허망할 때가 많다. 고전은 때로는 어렵기도 하지만 대체로 삶을 통찰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견(見). 시이불견(視而不見).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시(視)’는 마음 없이 보는 것이다. 보는 대상의 변함과 불변을 보지 않는 것이다. 그 모습과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이다. 견(見)은 대상의 모습을 바탕으로 변함과 불변, 보편성과 특수성, 의미와 본질을 보는 것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것보다 아무도 보지 못하는 면을 보는 것이다.
현재(現在). 현재는 변함없이 늘 그대로이면서 한 순간도 똑같지 않고 끊임없이 변해간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가 더 중요하지 않다. 과거나 미래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다. 현재 없이 과거나 미래가 있을 수 없다. 과거, 현재, 미래 중에 어느 하나가 없으면 다른 것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만 생각하다 현재를 놓치는 경우가 많으니 ‘카르프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말하게 된다.
권위(權威). 모든 것은 변하니 권위도 변한다. 없던 권위가 생기고 있던 권위가 없어진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니 권위는 변하지 않는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권위는 여전히 보통 사람들에게 힘이 있다. 권위가 생기면 그 권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권위를 내려놓아야 권위가 유지되거나 더 생긴다. 권위가 없는 사람이 겸손하기는 힘들다. 권위가 없는 사람은 오히려 비굴하지 않도록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권위가 높아질수록 끊임없이 겸손해야 끝마침이 아름답다.
소통(疏通).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오랜 만에 만나는 사람이 전혀 몰라보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몇 마디 나누다 보면 여전(如前)히 옛날 그대로인 듯한 면을 보기도 한다. 소통을 잘 하기 위해서 그 대상의 변함과 변하지 않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소통의 장소와 시간은 한계가 있다. 자신이 말하는 만큼 상대도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상대가 듣는 만큼 자신도 들으려고 해야 한다.
인생(人生).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다른 말을 더 붙여 무엇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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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문장들이 많다.
“모든 인간은 완벽하게 불완전하다”(정신과전문의 정혜신 박사)
“네가 보는 대로 날 받아들여. 이봐, 이게 나야. 네가 날 원한다면 잊지 마. 넌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야 해”(브리트 스피어스. What you see)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생각의 탄생』)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에르메스 브랜드 광고)
“속기를 빼고 골기만 남겨라”(추사 김정희)
“연륜은 사물의 핵심에 가장 빠르게 도달하는 길의 이름이다”(곽재구)
“인생은, 사랑은 시든 게 아니라네/ 다만 우린 놀라움을 잊었네/ 우린 사랑을 잃었을 뿐이네”(김용택, 첫사랑)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베토벤이 작곡했을 때 태어나고
버스타인이 지휘했을 때 태어나고
당신이 들을 때 태어납니다.
음악이 세 번째 태어나는 순간,
인켈이 함께 합니다.”(박웅현, 인켈 광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인 게 인생이더라”(박웅현)
“본다는 것은 사실 시간을 들여야 하고 낯설게 봐야 합니다”(박웅현)
“개들은 원형의 시간을 살고 있다. 행복은 원형의 시간 속에 있다”(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고 있지”(한형조, 『붓다의 치명적 농담』)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 더없이 클 것이다”(맹자)
“어떤 선택을 하고 그걸 옳게 만드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건 뭐냐, 바로 돌아보지 않는 자세입니다”(박웅현)
“나는 지금 내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적 지점에, 시간 속에 이 정확한 순간에 자리잡고 있다. 나는 이 지점이 결정적이지 않은 것을 허락할 수 없다”(『지상의 양식』)
“결코 미래 속에서 답을 찾으려 하지 말라.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다”(『지상의 양식』)
“우리 생에 각 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뀔 수 없다”(『지상의 양식』)
“인생은 잘 짜여진 이야기보다는 그 하나하나가 관능적 기쁨인, 저 내일 없는 작은 조각들의 광채.”(사르트르)
“살아 있다는 그 단순한 놀라움과 존재한다는 그 황홀함에 대하여”(김화영)
“대중적인 스타와 나를 분리시킬 필요가 있다”(폴 매카트니)
“다른 문화를 접할 때 우리에겐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호기심과 존중, 그리고 윗사람이 될수록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재능을 사는 일입니다. 프랑스 속담에 ‘재능은 다른 사람들의 재능을 발견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죠”(장 마리 드루)
“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다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약해져라.”(박웅현)
소통을 잘 하는 방법...일곱 단어로 설명해보기, 15초 안에 마음을 끌 수 있게 말해보기.
“지구는 탄생 이래 단 한 번도 동일한 날씨를 반복하지 않았다”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공부하는 데 마음에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마라.
수행하는 데 마 없기를 바라지 마라.
일을 꾀하데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마라.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기를 바라지 마라.
공덕을 베풀려면 과보를 바라지 마라.
이익을 분에 넘치게 바라지 마라.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마라.”(고창 선운사 <보왕삼매론>)
-『여덟 단어』(박웅현)를 읽고
'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 >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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