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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호랑이 꼬리를 밟듯이-이행(履行)의 태도

by 두마리 4 2024. 8. 25.

친애하는 슐츠 씨를 읽었다.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편견(偏見)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다. 단지 생각으로만 그친다면 문제될 리 없다. 치우치게 보고 상대하며 그에 따른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데 문제가 있다. 편견은 차별이다.

 

책 제목에 나오는 슐츠는 찰스 슐츠다. ‘피너츠의 작가다. ‘피너츠는 슐츠가 1950102일부터 2000213일까지 신문지상에 연재한 4컷 만화이다. 구독자 35500만 명이 넘는 만화계의 전설이다. 75개국 2,600종의 매체에 연재되었다.

 

피너츠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찰리 브라운, 샐리 브라운, 스누피, 라이너스 반 펠트, 루시 반 펠트, 슈레더, 마시, 우드스톡, 픽펜, 플랭클린 등이다. 플랭클린은 유일하게 흑인인데 1968731일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1960년대는 흑인 민권운동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점이었다. 흑인의 권리를 위해 싸우던 마틴 루서 킹 목사가 19684월에 백인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로부터 두 달 뒤 흑인 유권자의 지지를 받던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이 암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 당시 교사였던 해리엇 글릭먼이 찰스 슐츠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이들의 무의식적인 태도 즉 인종 간의 우정과 관용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며 피너츠에 흑인 아이 캐릭터를 넣을 것을 제안한다. 슐츠는 고민 끝에 그렇게 하고 싶어도 흑인 이웃들을 내려다보는 태도로 보일 것 같아서 그러지 못한다며 해결책을 모르겠다는 답장을 보낸다. 글릭먼은 흑인 친구의 의견을 묻고 도움을 청한다. 글릭먼에게 도움을 요청 받은 흑인 친구는 슐츠에게 그런 비난은 긍정적인 결과를 위한 작은 부작용이라고 말한다. 그는 흑인들이 평범하게 생활하고 사랑하고 걱정하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풍경을 그려달라고 요청한다. 그 후에 피너츠에 처음으로 흑인 캐릭터 플랭클린이 등장하게 된다. 플랭클린은 평범한 조연이다. 슐츠는 플랭클린을 통해서 조용히, 드러나지 않게암묵적으로 흑인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주역의 천택리괘(天澤履卦䷉)가 떠오른다. ()는 밟음, 밟힘이다. 이행, 실천이다. 괘사(卦辭)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지 않으니 형통함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도 물리지 않으려면 삼가고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한다. 호랑이는 강자이고, 뒤따라 가며 꼬리를 밟는 자는 약자이다. 그에 마땅한 예의가 있다면 예의를 지키며 신중하게 행동하고 실천해야 재앙이 없을 것이다. 리괘의 효사에서도 소박하게 이행해야 허물이 없고, 조심조심해야 마침내 길하고, 이미 밟아온 것의 상서로운 것을 살펴서 잘해야 길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 제대로 보지 못하고 제대로 밟을 수 없으면서 이행하면 재앙을 부르고, 빠르게 이행하면 바르게 하더라도 위태로울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구사(九四)의 효사(爻辭)가 리호미(履虎尾) 색색종길(愬愬終吉)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음이니, 두려워하면서 조심조심하면 마침내 길하다는 뜻이다.

 

편견과 차별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는 자는 강자이다. 편견을 넘어서는 이행(履行)이야말로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물리지 않을 것처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슐츠의 드러나지 않는 조심스러운 이행, 실천은 혁명적인 투사의 행위 못지않게 용감하고 위대한 것이다.

 

-친애하는 슐츠 씨(박상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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