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포터의 소설 『사라진 것들』을 읽었다. 오스틴, 담배, 넝쿨식물, 라임, 첼로, 라인백, 고추, 숨을 쉬어, 실루엣, 알라모의 영웅들, 벌, 포솔레, 히메나, 빈집, 사라진 것들. 15편의 단편소설이 들어있다. ‘사라진 것들’은 그 중의 한 편이다. 소설은 이야기이고, 이야기로 말하는 순간 그것의 과거의 일이다. 과거의 일들은 사라진 것들의 일종이다. 15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사라진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오스틴’에서 화자는 옛친구들을 보면서 ‘마치 그들은 멈춘 시간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고 그동안 나만 다른 곳에서 결혼을 하고 자식도 낳으면서 늙어간 것 같다’고 말한다. 나의 청춘만 사라졌다고 느낀다. 청춘을 사라지게 한 것은 아내와 자식들이다. ‘담배’에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담배, 커피, 와인을 즐기는 낭만적인 여유가 있었는데,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러한 것들이 줄어들고 사라졌다고 말한다. ‘첼로’에는 뛰어난 첼리스트이면서 음대 교수인 화자의 아내가 어지럼증 균형 감각 이상으로 그 연주 능력이 사라져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간 것은 모두 사라진 것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면도 있다. 한 시간 전의 일은 사라졌는가. 어제 일들은 사라졌는가. 어제 만났던 사람을 오늘 또 만나고 어제 일들을 생생히 기억하는데 어찌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어제 만났던 그 장소도 어제와 똑같이 멀쩡하게 그대로 있는데 사라진 것인가.
‘넝쿨 식물’이란 작품에서 ‘마야’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 이메일 계정에서 네게 이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니야”
50년 전 마을 어귀에 있던 느티나무는 아직도 그대로 있다. 엄밀히 말하면 많이 변했겠지만 보통은 ‘그대로’라고 말한다. 그 느티나무가 같은 느티나무이려면 느티나무 자체가 변함이 별로 없어야 한다. 느티나무가 변함이 없더라도 그것을 보는 내가 같은 것으로 볼 수 없으면 같은 것이 아니게 된다. 거의 같은 공간일 수는 있어도, 시간과 사건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기억 속에 지나간 사건들이 나이테처럼 축적되어 그것이 변화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억이 중요할까, 망각이 중요할까. 보통 기억하려고 하고, 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공부의 핵심은 기억이다. 누구나 공부를 잘하려고 한다. 서양 철학에서는 기억을 중요시했다.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는 기억에 의해 발견된다. 진리를 나타내는 그리스어 ‘알레테이아’는 망각의 강 ‘레테’를 거슬러 가는 기억이다.
동양 철학에서는 망각을 중요하게 봤다. 공(空), 허(虛), 망(忘), 무념(無念), 무상(無想), 무아(無我) 등을 강조하는 전통이 있다. 외적인 것을 모두 망각하고 앉아 있는 채로 자신마저 잊어버리는 경지가 좌망(坐忘)이다. 무념무상과 해탈이다.
서양 철학자 중에 니체는 창조와 생성을 위해 망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짊어지고 꾸역꾸역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낙타’로 비유된다. 그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를 쟁취하는 사람은 ‘사자’이다. 그 자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망각과 순진무구 속에서 창조의 놀이를 즐기는 존재가 ‘어린아이’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아니야’라고 말하는 ‘마야’는 과거의 자신을 망각하고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각이 기억보다 중요한가. 아니다. 기억을 바탕으로 창조되는 일들도 많지 않은가. 다만 망각도 기억만큼 중요하다. 기억하지 않으면 망각할 것도 없다.
나타난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진다. 만난 것들은 언젠가는 헤어진다. 기억한 것들도 언젠가는 망각한다. 동료가 사라지고, 친구가 사라지고, 가족이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엔 나 자신도 사라질 것이다.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나는 내가 아닌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증거다. 평평한 것은 변해서 평평하지 않은 비탈이나 방죽이 된다. 가고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다. 나타났는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없다. 사라졌는데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은 없다.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나는 사라져 다른 것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 이미 자식들 몸에 유전자로 일부 현생해 있다. 내 몸을 이루었던 원소들은 사라져 다른 것으로 나타나리라. 돌이든, 나무든, 개나 고양이든, 또다른 물질을 이루리라. 과거를 믿는 만큼 미래를 믿는다. 현생을 믿는 만큼 전생과 내생을 믿는다. 그것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전혀 다른 차원의 또다른 세상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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