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따란 세 치 혀
뉘라서 가볍다 말할 수 있나
좁다란 입 안에서 연출되는 삶
물 먹인 종잇장 덧대고 덧댄 죄(罪)의 무게는
벼랑 끝 시간 앞에 우릴 세우는데
바로 걷고 있다고 곧은길일까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일까
겉이 거칠다고 속조차 그럴까
곧은 저 강(江)도 조만간 모퉁일 만날 테지
겉도는 저 수면도 가라앉은 삶을 기억할 테지
퍼붓는 한숨에 더 빛날 윤슬의 가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맥락의 강
의지 하나로 싹 틔우는 지악한 삶
무엇으로 세상의 무게 저울질할 수 있을까
말 없는 물음표에 다시 던지는 깊은 물음
‘도무지’
-『목적어와 외딴섬』(오양옥) ‘도무지’
도무지는 ‘아무리 해도’,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아주’의 뜻이며 부정어와 호응해서 쓰이는부사다.
도무지는 도모지(塗貌紙)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도모지(塗貌紙)는 얼굴에 종이를 바르다는 뜻이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따르면 도모지는 백지(白紙) 한 장을 그 얼굴에 덮고 물을 뿜어 죄수의 숨이 막혀 죽게 하는 형벌이다. 백지사(白紙死)라고도 한다. 도모지(塗貌紙)는 방언 도모지(都某知)와 같은 말로 이러니저러니 할 것 없이 한 마디로 휩싸서 말하는 폐일언(蔽一言)과 같은 뜻이라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또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는 뜻이 있다.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을 정도의 조작과 허위와 억지가 판을 치고 있다. 도모지(塗貌紙)의 형벌을 당하는 듯한 질식을 느낀다. 세 치 혀로 만들어 내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미친 듯이 춤추고 있다. 불법으로 합법을 주장하고, 불의로써 정의를 내세우며, 파괴로 건설하고, 독재로 자유와 민주를 지킨다고 호언(豪言)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보며 도모지 사형(死刑)을 떠올린다. 도모지가 아니라면 총살(銃殺), 참살(斬殺), 교살(絞殺), 전기살, 독약살, 능지처사…. 죽어야 한다면? 죽이고 싶다면?
사마천은 한나라 황제인 ‘무제’에게 ‘이릉’ 장군을 옹호하다 노여움을 사 옥에 갇히고 말았다. 당시 사형 언도자에게 세 가지 형벌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 첫째, 허리가 잘리고 죽는 것, 둘째, 50만 전의 속죄금을 내고 풀려나는 것, 마지막으로 궁형(宮刑)을 받고 살아나는 것이다.
검사, 변호사, 판사 모두 세 치 혀로 유죄와 무죄를 다툰다.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인가. 여전히 힘이 있으면 유죄와 무죄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가.
(공백 포함 1,151자)
별별챌린지 8기 2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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