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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168

마음 끝 김소월의 ‘하늘 끝’을 읽는다. 불현듯 집을 나서 산을 치달아 바다를 내다보는 나의 신세여! 배는 떠나 하늘로 끝을 가누나! ----------------------------- 부르다가 내가 죽은지 오래 기다리다 선 채로 돌이 돼버린지 오래 한 번씩 느닷없이 마음에 불이 나서 부리나케 미친 개처럼 헐떡이며 산을 넘는다 산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끝나는 곳에 하늘이 끝나는 곳에 끝나지 않는 내 마음은 어디에 2023. 12. 23.
합장(合掌) 김소월의 ‘합장’을 읽는다. ------------------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어와라. 아, 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불 빛에 해작여라, 희미한 하늘 편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운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 하고, 더 안 가고, 길가에 우두커니, 눈 감고 마주 서서, 먼먼 산 절의 절 종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 합장(合掌) 두 손을 모아본다 두 손을 모아서 뭘 하자는 것인가 두 손을 모아 봐라 두 손을 모아 보면 의외로 뜨거운 기운이 모인다 간절한 마음이 모인다 기도를 위해서 합장을 하고 합장을 위해서.. 2023. 12. 20.
바르게 살기 바르게 앉아라. 똑 바로 서라. 글씨를 바르게 써라. 바른 말을 써라. 바른 생활을 해라. 대체로 어릴 때 많이 들었던 말들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바른생활’이 있다. 바르게살기협의회도 있고 바르게살기 운동도 한다. ‘바른’ 것은 중요한 모양이다. ‘바른’ 것은 주로 어릴 때 습관처럼 형성시켜야 할 태도나 가치관인 모양이다. 바른 것은 가지런함과도 통한다. 식물의 싹이 땅가죽을 힘겹게 막 뚫고 나왔을 때는 구부러진 것들이 많다. 바람에 흔들리면서 하루 이틀 사이에 금방 가지런하게 자리잡는다. 다른 장애물이 없다면 바르고 곧은 자세를 잡은 뒤에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한다. 식물도 초기에 바른 자리에 바른 모양이 중요하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사람도 어릴 때는 흔들리면서 바른 자세를 잡아간다. 흔들.. 2023. 12. 17.
반복 다니카와 슌타로의 ‘반복’을 읽는다. 반복해서 이렇게도 반복 반복해서, 이렇게 이렇게 반복 반복 반복해서, 반복 반복 연이어 이렇게도 반복해서 반복, 몇 번인가 반복하면 되는가 반복하는 말은 죽고 반복하는 것만이 반복 남는 반복, 이 반복의 반복을 반복할 때마다, 해는 뜨고 해는 지고 그 반복에 반복하는 나날, 반복 밥을 짓고 반복해서 맞이하는 아침의 반복에 어느덧 밤이 오는 이 반복이여 말하지 마 말하지 마 안녕이라고! 이별의 행복은 누구의 것도 아니야 우리들은 반복한다 다른 것은 없다 반복 반복해서 꿈꾸며 반복해서 만나서 껴안고 반복해서 흘리는 군침이여 이제 만날 수 없을 반복 언제까지나 만나는 반복 만나지 못하는 반복의 나무 나무에 바람은 불고 오늘 반복하는 우리들의 끊임없는 기침과 냄비에 물 긷는.. 2023.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