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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142

찬란한 멸종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상 이변이 생길 때마다 우울함을 피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의 노력으로 탄소 농도를 낮추기는 역부족이다. 한 개인이 기상 이변을 걱정한다는 것은 기우(杞憂)처럼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말라죽어가는 소나무가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초탈하기는 힘들다.  이정모의 『찬란한 멸종』을 보면 좀 초연해진다. 46억 년 동안에 지구에서 일어난 대멸종에 대해서 역순으로 말하고 있다. 46억 년 동안 지구의 기온은 지금보다 훨씬 더 더웠던 적도 있었고, 더 추웠던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생물들의 대규모 멸종은 일어났지만, 지구는 멀쩡하다. 인류가 멸종하더라도 지구는 멀쩡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정 능력을 회복할 것이고, 다른 생명체가 출현할 것이다.  현재 탄소 농도가 높아진 .. 2024. 10. 24.
허무 2 “죽음은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만 불확실하다”, 중세 유럽의 광장 “산 자들이 당신에게 잘해주지 않았겠죠. 그러나 죽음은 당신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요”, 오스트리아 납골당 외벽 “육체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피부 껍데기의 아름다움일 뿐이다.… 만약 누군가가 여자의 콧구멍, 목구멍, 똥구멍에 있는 것을 상상해본다면, 더러운 오물밖에 떠오르는 게 없을 것이다”, 중세 어느 수도사 장자가 해골에게 다시 삶을 받겠느냐고 권하자, 해골은 군주도 신하도 없는 죽음의 세계에 머물겠노라며 그 제안을 사양한다. “내 어찌 인간 세상의 고단함을 다시 반복하겠는가”, 『장자』 지락 편 “인생이란 걸어다니는 그림자, 불쌍한 연극배우에 불과할 뿐/ 무대 위에서는 이 말 저 말 떠들어대지만/ 결국에는 정적이 찾아오지, 이것은.. 2024. 10. 14.
자본주의와 죽음 충동 『오늘날 혁명은 왜 불가능한가』(한병철)을 읽었다. 독일에서는 『자본주의 죽음 충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고 한다. 여러 챕터 중에 가장 솔깃한 내용이다.  모순적인 표현들이 단박에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치명적으로 매력적이다. 모순은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모순적이다. 논리나 합리(合理)는 제한된 국면이나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인류 문명의) 성장과 자기 파괴가 일치한다”“인간은 살해함으로써 죽음을 막는다”“삶을 죽음으로부터 떼어놓기는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적인 요소인데, 이 떼어놓기가 설죽은 삶, 산 죽음을 낳는다”“우리는 죽기에는 너무 생기가 넘치고 살기에는 너무 죽어 있다”“타인을 만짐으로써 비로소 나를 만지고 나를 느낀다. 타인은 안정적인 자아의 형성에 필수적이다... 2024. 9. 29.
입 다물기 딱 좋은 기회 -『맡겨진 소녀』(클레어 키건)을 읽고 어릴 때,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시절에 남의 집에 맡겨진다면 어떨까. 대체로 낯설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서먹하고, 엄마 아빠와 형제자매가 그리울 것이다. 맡겨진 집이 훨씬 풍족해도, 더 누추하고 옹색하고 부족한 자기 집에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맡겨진 소녀』(원제:foster)의 주인공 소녀는 어머니가 동생을 출산하는 등의 가정 형편 때문에 여름 한 철 외가쪽의 친척 집에 맡겨진다. 맡겨진 집의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다른 무엇을 느끼게 해준다.  소녀는 맡겨진 첫날 ‘묘하게 무르익은 산들바람이 마당을 가로지름’을 느낀다. 그 집의 우물 물을 여섯 잔이나 마시면서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 2024.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