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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167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 사월 중순 아침이다. 엊저녁에 비가 내린 모양이다. 울산에서 언양으로 가며 길가의 나무들을 본다. 비로 젖은 물기가 마르지 않아 검은 윤기가 난다. 비가 갠 아침이라 풀과 나무들이 아주 맑고 싱싱하다. 높지도 않은 산 허리에 흰 구름이 목욕 가운처럼 걸쳐 있다. 이제 막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빛줄기들이 나뭇잎에 배어있는 빗물을 하얀 증기로 날려올린다. 구름같은 안개같은 하얀 기운이 산등성이로 꿈틀거리며 날아오른다. 옛날엔 오월의 신록(新綠)을 예찬했다. 야산(野山)과 높은 산 중턱까지 새잎들이 나와 온산을 담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까시나무, 벽오동도 잎을 내밀고 있다. 오동(梧桐)과 등(藤)나무도 자줏빛 꽃을 피우고 있다. 비 갠 아침, 물기가 채 덜 말라 싱싱한 담초록의 나무와 숲은 말할 수 없.. 2023. 4. 17.
귀목(櫷木)나무 귀목(櫷木) 나무 마을 어귀에 큰 귀목나무가 있다. 귀목나무는 느티나무다. 정자 나무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정자가 옆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정자를 대신할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느티나무 한 그루는 정자 몇 개의 그늘과 휴식처를 만들어줬다. 마을 어귀에 큰 느티나무가 없는 마을도 있었지만, 있으면 마을 어귀에 있었다. 높이가 20~30미터가 되니 마을 어귀가 아니면 용납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이 직선화되기 전에는 마을 어귀에 있는 큰 귀목나무 아래로 난 길을 통해서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귀목 나무 아래를 지날 때 땅바닥엔 툭툭 튀어나온 힘줄처럼 귀목 나무의 뿌리가 길바닥 위로 드러나 있곤 했다.  새로운 코스로 마을길이 넓혀져서.. 2023. 4. 14.
불칼 불칼 안골양반은 젊었을 때부터 속이 안 좋았다. 찬물을 마시면 거의 탈이 났다. 안골댁은 늘 따뜻한 숭늉을 준비해야만 했다. 6~70년대만 하더라도 시골에는 거의 조선시대와 같은 가부장적 질서가 남아 있었다. 집안이 대단하거나 한미(寒微)하거나 집안 나름대로 가문에 대한 자부심을 내세웠다. 벼슬께나 한 조상을 찾아 고려시대까지 더듬어 올라갔다. 족보 편찬도 문중의 권위를 세우는 방법으로 몇 년에 한 번씩 새롭게 편찬했다. 추석과 설날에는 온 집안 남자들이 모여 집집마다 제사를 같이 모시느라 마당에 멍석을 깔기도 했다. 아침부터 시작한 제사가 저녁 무렵이 돼야 끝나곤 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벌초를 할 때도 온 집안의 남자들이 다 모였다. 가을에는 들판으로 산으로 조상 묘를 찾아다니며 묘사를 지냈다. 안.. 2023. 4. 13.
감나무 감나무 어릴 때 시골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집 주위에 몇 그루씩은 있었다. 주된 작물에 방해가 안 되는 밭 가장자리 여기저기에 감나무를 심었다. 감잎은 4월 초중순 돼야 나온다. 감꽃은 5월 중순이 지나야 핀다. 감잎도 다른 것에 비해 톡톡한 편이지만 감꽃도 다른 꽃들에 비해서 작고 꽃잎은 두껍다. 시들어 바래기 전의 감꽃은 하얗고 청초하게 나름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다. 감꽃을 주워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기고 했고 때론 먹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 감잎을 엮어서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겨릅대로 물레방아 등의 장난감을 만들 때도 감을 이용했다. 감을 놓고 이쪽 저쪽으로 겨릅대를 끼우면 감은 훌륭한 연결 매체가 됐다. 감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감나무와 친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감나무 밑에서 비를 .. 2023. 4.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