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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귀목(櫷木)나무

by 두마리 4 2023. 4. 14.

귀목(櫷木) 나무

 

마을 어귀에 큰 귀목나무가 있다. 귀목나무는 느티나무다. 정자 나무라고도 했다. 처음에는 정자가 옆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정자를 대신할수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큰 느티나무 한 그루는 정자 몇 개의 그늘과 휴식처를 만들어줬다. 마을 어귀에 큰 느티나무가 없는 마을도 있었지만, 있으면 마을 어귀에 있었다. 높이가 20~30미터가 되니 마을 어귀가 아니면 용납하기 쉽지 않았으리라.

 

새마을운동으로 마을길이 직선화되기 전에는 마을 어귀에 있는 큰 귀목나무 아래로 난 길을 통해서 마을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 귀목 나무 아래를 지날 때 땅바닥엔 툭툭 튀어나온 힘줄처럼 귀목 나무의 뿌리가 길바닥 위로 드러나 있곤 했다.

 

새로운 코스로 마을길이 넓혀져서 닦이고 난 후에 귀목나무 주변은 마을의 공원이 되었다.마을의 상징처럼 돼 있는 큰 귀목나무는 몇 아름이나 될 정도로 컸다. 동굴처럼 비어있는 귀목나무의 속을 아이들이 들락거렸다. 큰 귀목나무는 너무나 둘레가 커서 타고 오르기가 힘들었고 안감힘을 써서 겨우 한 단계 오르는 것으로 끝이었다. 큰 귀목 나무 아래에 작은 귀목나무들은 큰 귀목나무에 눌려 그 가치처럼 비스듬히 누워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타고 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45도로 경사진 나무를 타기 만만했다. 귀목나무는 수피가 거칠지 않고 적당히 매끄러웠으며, 나뭇가지의 탄력도 있어 아이들이 타고 즐기기에 좋았다.

 

귀목나무는 한 여름엔 온 마을 사람들의 피서처가 됐다. 어른들은 점심을 먹고 난 뒤 장기를 두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는 식으로 그 그늘 밑에 쉬다가 뜨거운 여름 해가 열기를 거두고 산마루를 넘어설 때쯤 돼서야 논밭으로 일을 나가곤 했다. 아이들은 귀목나무 아래서 놀다가, 귀목나무를 타고 놀다가 바로 아래에 흐르는 시냇물에 내려가서 멱을 감기도 했다.

 

남자 아이들이 멱을 감을 때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멱을 감는 웅덩이가 따로 있었다. 여자 애들은 옷을 거의 다 입다시피 하고 멱을 감았다. 낮보다는 밤에 멱을 감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남자 아이들은 옷을 입지 않고 멱을 감는 았다. 젖은 옷을 말리기 싫어서다. 물속에 오래 놀다 보면 한여름인데도 체온이 떨어져 추웠다. 아이들은 따뜻하게 열받은 매끈한 바위를 찾아 배를 붙이고 때론 등을 붙이고 몸을 데우곤 했다.

 

큰 귀목나무는 마을 뒤의 당산제(堂山祭)를 지내는 곳의 당산나무와 더불어 금기(禁忌) 대상이었다. 마을의 보호수였다. 나뭇가지 하나라도 건드리면 동티가 난다고 했다. 나무를 지키는 전통적인 방법이기도 했다. 큰 귀목나무를 중심으로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느티나무 가지를 몰래 잘라 썼다가 어느 집에서 재앙을 당했다는 소문이 돌 때도 있었다. 당산제도 정월대보름 때쯤 해마다 지냈다. 소임(所任)을 맡은 사람은 보름 전부터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며 금욕(禁慾)했다. 부부 간에 각방을 쓸 정도로 조심했다. 마을에 안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면, 그 해 소임(所任)을 맡은 사람의 금욕과 지극한 정성의 정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수령(樹齡)이 몇 백년씩 되는 마을 어귀의 큰 귀목나무는 지금도 몇 십 년 전의 옛날처럼 있다. 나무 밑의 공간은 마을 길을 확장하여 포장한다고 더 좁아졌다. 게다가 그 큰 귀목나무 바로 아래 정자까지 지어놓았다. 나무 그늘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더 없어졌다. 정자나무 아래 있는 정자는 품위가 없다. 그 정자 때문에 정자나무도 멋이 없어졌다. 그 정자는 마을마다 거의 하나씩 있는데, 모양도 크기도 거의 같다. 1억짜리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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