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의 파동

감나무

by 두마리 4 2023. 4. 10.

감나무

 

어릴 때 시골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집 주위에 몇 그루씩은 있었다. 주된 작물에 방해가 안 되는 밭 가장자리 여기저기에 감나무를 심었다. 감잎은 4월 초중순 돼야 나온다. 감꽃은 5월 중순이 지나야 핀다. 감잎도 다른 것에 비해 톡톡한 편이지만 감꽃도 다른 꽃들에 비해서 작고 꽃잎은 두껍다. 시들어 바래기 전의 감꽃은 하얗고 청초하게 나름 정갈한 아름다움이 있다. 감꽃을 주워서 목걸이나 팔찌를 만들기고 했고 때론 먹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 감잎을 엮어서 모자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겨릅대로 물레방아 등의 장난감을 만들 때도 감을 이용했다. 감을 놓고 이쪽 저쪽으로 겨릅대를 끼우면 감은 훌륭한 연결 매체가 됐다.

 

감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감나무와 친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감나무 밑에서 비를 피했다. 한여름 대낮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거나 쉬는 곳도 감나무 밑이었다. 길쌈할 삼대를 쪄서 껍질을 벗기는 일도 감나무 밑에서 했다. 여름에 밭일을 하다가 새참이나 점심을 먹을 때는 감나무 밑에서 먹었다. 어른들이 감나무 밑에서 쉬고 있을 때 아이들은 감나무에 올라가 놀았다. 말 안 듣고 까불다가 감나무에서 떨어지도 했다. 감나무는 재질이 연하다. 가지가 잘 부러진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감나무에서 한두 번은 떨어진 경험이 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것을 이때부터 체험했다. 날개가 없으니 추락하는 거다. 날개가 없는 인간이 날 수 있는 것은 꿈속이다. 꿈을 꿀 때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는 연습을 하면 멋진 비행을 할 수 있다. 인간이 나는 것은 꿈이다.

 

내가 살던 고향의 감은 땡감이었다. 떫은 감이다. 땡감은 홍시나 곶감이 됐을 때 단감보다 더 맛있다. 크기도 탱자보다 좀 크고 작은 귤만했다. 작지만 감씨가 없어 먹기 좋았다. 홍시가 안 됐을 때는 삭혀서 먹기도 했다. 삭힌 감은 단감이나 마찬가지다. 단감이 귀할 때였다. 가을 추수할 때쯤 삭힌 감을 많이 먹었다. 떫은 감은 홍시가 맛있다. 일찍부터 홍시가 되는 것은 벌레 먹은 감이다. 손에 닿일락 말락, 가지가 부러질까 버틸까 불안에 떨면서 가까스로 손에 넣은 그 홍시가 편안하게 땅 위에서 딴 것보다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시골의 땡감은 요즘 단감이나 대봉처럼 농사로 짓는 것은 아니었다. 약을 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관리도 전혀 하지 않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 대나무 광주리를 줄로 매달고 올라가 장대로 한 개 한 개 땄다. 나무 궤짝에 담아서 팔았다. 깎아 말려서 곶감도 만들었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는 저녁 지붕 위에 말리는 곶감을 내리면서 한 개씩 주워먹는 맛은 기가 막히다. 겉은 말라서 꾸덕꾸덕한데 속은 홍시처럼 말랑할 때가 제일 맛있다. 다 큰 감을 그대로 장독에 넣어 놓으면 홍시가 되었다. 그 홍시를 겨우내 간식으로 먹었다. 추운 겨울날 썰매를 타거나 물고기를 잡는다고 떨고 다니다가, 집안에 들어와 따뜻한 아랫목에서 시루떡에 찍어 먹는 홍시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단감도 대봉도 아닌 작은 땡감은 세월이 지나 값이 없어졌다. 그 많던 감나무도 대부분 잘라서 제재소에 목재로 팔아버렸다. 요즘은 어쩌다 감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홍시가 된 채로 운좋게 꽝꽝 얼기라도 하면 보약처럼 한 번씩 따 먹곤 한다.

 

'일상의 파동'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귀목(櫷木)나무  (2) 2023.04.14
불칼  (2) 2023.04.13
평행선  (2) 2023.04.08
깨어나보니 나는 죽어있었다  (3) 2023.04.06
다시 사랑한다면  (1) 2023.04.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