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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깨어나보니 나는 죽어있었다

by 두마리 4 2023. 4. 6.

<깨어나보니 나는 죽어있었다>

 

어느날 쓰러졌다

깨어나보니 꼼짝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간신히 가까스로 숨만 쉬고 있다

 

말 한 마디 할 수 없다

손발도 움직일 수 없다

눈꺼풀만 제멋대로 껌벅거린다

 

내가 없는 시간이 따로 흐르고

내가 없는 공간이 따로 존재한다

천지(天地)의 시작처럼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제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존재한다

 

내 뜻대로 까닥이나마 할 수 있는 부위가 없어

차라리 무한히 자유로운 나는

우주의 허공 중에 빛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로 쏘다니며

은하계 어느 행성에 있다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어릴 적 동네 친구들 만나

봄꽃이 만발한 논밭과 언덕배기에서

봄나물을 캐며 재잘대곤 한다

 

내가 없는 공간 속에서

내가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까마득하게 저 세상으로 흘러

 

어느날 깨어나보니

이미 내가 아닌

나는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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