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보니 나는 죽어있었다>
어느날 쓰러졌다
깨어나보니 꼼짝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간신히 가까스로 숨만 쉬고 있다
말 한 마디 할 수 없다
손발도 움직일 수 없다
눈꺼풀만 제멋대로 껌벅거린다
내가 없는 시간이 따로 흐르고
내가 없는 공간이 따로 존재한다
천지(天地)의 시작처럼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이제 내가 없는 곳에서
내가 존재한다
내 뜻대로 까닥이나마 할 수 있는 부위가 없어
차라리 무한히 자유로운 나는
우주의 허공 중에 빛보다 빠른
생각의 속도로 쏘다니며
은하계 어느 행성에 있다가
시공(時空)을 초월하여
어릴 적 동네 친구들 만나
봄꽃이 만발한 논밭과 언덕배기에서
봄나물을 캐며 재잘대곤 한다
내가 없는 공간 속에서
내가 없이 다른 사람들의
시간이 흐르고 흘러
까마득하게 저 세상으로 흘러
어느날 깨어나보니
이미 내가 아닌
나는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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