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움277 여기 다니카와 슌타로의 「여기」라는 시를 읽는다. 어딘가 가자고 내가 말한다 어디 갈까 하고 당신이 말한다 여기도 좋을까 하고 내가 말한다 여기라도 좋네 하고 당신이 말한다 얘기하는 동안 해가 지고 여기가 어딘가가 되어간다 ----------------------------- 그때는 다들 어딘가로 떠났다 면소재지로, 읍내로, 대구로, 부산으로, 서울로 어디쯤 가서 멈춰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고 그곳은 당연히 떠나야 하는 곳인줄만 알았다 여기가 좋아서 오래 산 것이 아니다 살다보니 여기도 살만한 곳이 되었다 얘기하고 사는 동안 어느덧 마흔 해가 지나 찾아떠난 어딘가는 여기가 되어 있다 같이 얘기하고 지내던 애들은 어디가 좋을까 생각도 없이 다시 조금씩 더 멀리 어딘가로 떠났다 2023. 11. 19. 까마귀 햇볕이 땅거죽을 여기저기 잘라먹으며 들어오는 비교적 이른 아침 춘천에서 서울로 나오는 국도 꽤 높은 벽으로 된 중앙분리대를 못 뛰어넘고 차여 치여 죽은 작은 짐승의 주검 그 주검 위를 한 두 대의 차가 더 지나가 반쯤은 으깨져 바닥에 달라붙었지만 아직은 먹을 게 많아 보이는지 까마귀 서너 마리가 쪼아 먹으려 달라드는 차를 피해 죽음을 무릅쓰고 오르락 내리락 달라들어본다 모든 삶은 죽음으로 이루어진다 2023. 11. 18. 춘천(春川)...김유정, 예술(禮술) 춘천은 우리말로 하면 ‘봄내’다. 봄은 오행으로 동방(東方)이다. 강원도는 동(東)쪽 목(木)이다. 춘천은 오행으로 보면 수목(水木)이고 북동(北東) 방향이다. 마침 댐도 많다. 소양감댐, 춘천댐, 의암댐 3개나 있다. 호반(湖畔)의 도시라 할 만하다. 춘천에는 김유정 생가가 있다. 김유정면(面)도 있고, 김유정역도 있다. 김유정은 1908년 집안의 2남 6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김유정의 집은 서울 종로에 아흔아홉간짜리 집을 살 정도로 수천석지기 부자였다. 7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김유정의 짝사랑은 유명하다. 휘문고보를 졸업할 때쯤 4살 연상인 명창 박록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 짝사랑을 하면서 혈서를 쓰고 선물도 보내고 만나서 죽이겠다고 협박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 2023. 11. 17. 춘천행 춘천에 왔다. 울산에서 오전 10시쯤 출발해서 오후 3시쯤 춘천에 도착했다. 2000년 8월에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왔었다. 그때는 울산에서 춘천까지 오는 데 10시간 정도 걸렸다. 23년 전에 다섯 살이었던 딸아이는 부모 뜻에 따라 춘천에 와서 2박 3일 동안 지냈다. 인형극을 보고, 춘천 막국수와 닭갈비를 먹고, 빙상장을 구경하고 의암호에서 오리배를 탔다. 23년 전 그 딸아이가 서울에서 춘천으로 출장 와서 일하고 있다. 이제 나는 딸아이의 뜻에 따라 울산에서 춘천까지 왔다. 1989년에 처음 시작된 춘천인형극제는 올해 35회째를 치렀다고 한다. 빙상장과 의암호, 오리배도 아직 있다. 23년 전에 없던 카페들, 그 카페에서 감자빵을 사먹었다. 23년 전에 없었던 인디언 독에서 저녁을 먹었다. 2023. 11. 16. 이전 1 ··· 45 46 47 48 49 50 51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