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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172

영화, 하얼빈 영화를 보면서 줄곧 믿음과 배신을 생각했다. 나 자신을 얼마나 신뢰하는가. 나 자신을 믿는 마음이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얼마나 강한가. 사소한 일상 생활에서도 얼마나 쉽게 나 스스로를 배반하는가. 나를 의심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총을 들고 적군과 싸움을 할 때 더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 동지에 대한 믿음도 마찬가지다. 믿지 못하면 무슨 일을 같이 하겠는가.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삶과 죽음이 한 순간에 왔다갔다 하는 전투에서는 자신이나 동지에 대한 의심이나 배신의 유혹 또한 그만큼 강해진다.  대한의군과 일본 군대가 처절하게 죽이고 죽는 싸움 장면이 나온다. 그 다음 포로로 잡힌 일본 군인 몇 명을 참모중장 안중근은 동지와 부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만국공.. 2025. 1. 13.
감기(感氣) 감기가 오래 간다. 걸린 지 3주가 지난 것 같다. 독감(毒感)인가. 독감의 뜻 안에는 유행성 감기도 있다. 지독하지는 않다. 오래 가는 유행성인가. 목이 조금 따갑다가 가래가 끓고 기침이 가끔씩 나곤 한다. 코는 막히지 않고 열도 별로 나지 않는다.  감기가 걸렸다고 일상적으로 하던 일을 중지한 건 없다. 감기가 독하지 않아서인가. 병원에는 가지 않았다. 감기 약도 먹지 않았다. 언젠가 낫겠지 하고 있는데 그저께부터는 목소리도 살짝 맛이 갔다. 오늘은 목소리가 회복되는 듯하다.  어릴 때 유난히 감기가 잦았다. 아마도 면역력이 약했나 보다. 늘 어지러웠던 기억이 있다. 감기가 걸려 땀을 흘리고 나면 더 어지러웠다. 며칠 동안 코가 꽉 막혀 있으면 코를 베어 내고 싶을 정도 갑갑했다. 시골이라 병원도 약.. 2025. 1. 12.
대낮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올 겨울 들어 처음이다. 올해 유난히 늦게까지도 풀이 죽지 않던 풀들도 12월 말이 되어서야 시들어 마르는 모습이었다.  ‘풀’을 사전에서 찾아봤다. 수영장을 뜻하는 풀(pool)을 제외하면 3개다. 하나는 쌀이나 밀가루 따위의 전분질에서 빼낸 끈끈한 물질을 뜻하는 풀이다. 이는 주로 무엇을 붙이거나 피륙 따위를 빳빳하게 만드는 데 쓴다. 풀의 빳빳한 기운이나 차진 기운은 ‘풀기’라고 한다. 또 빳빳해지는 것을 ‘풀이 서다’라고 하며, 빳빳하지 아니하게 되는 것을 ‘풀이 죽다’라고 한다.  다음은 초본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풀’이다. 목질이 아니어 줄기가 연하고, 대개 한 해를 지내고 죽는다. 대를 두고 풀도 나무도 아닌 것이라고 한 시조 구절이 있다. ‘대’를 찾아보니 .. 2025. 1. 9.
다 썩어가는 모과 한 알 어느 늦가을 모과나무 아래 떨어진 모과를 두 개 주워왔다. 거실에 두고 진하지 않은 향과 노오란 빛깔을어쩌다 즐겼다. 어쩌다 한 번 쳐다보았다. 어쩌다 한 번 집어서 냄새를 맡았다. 그러다 크고 잘생긴 하나가먼저 썩었다. 주워왔던 그곳에 내다 버렸다.  오늘, 하나 남은 모과에 무심히 눈이 갔다. 이리 저리 돌려가며 보았다. 눕혀도 보았다. 위에서도 보았다.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 보였다. 작은 물개처럼 보였다. 작고 통통한 한 마리 새처럼 보였다. 한 무더기 똥처럼 보였다. 다 썩어가는 모과일 뿐인데 보기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보인다.  다 썩어가는 모과를 물개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노란점박이 새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한 무더기 똥이라고 우겨볼까. 다 썩어가는 모과를 다 썩어가는.. 2025.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