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풍정괘(水風井卦䷯), 현대사회에서 ‘우물’은 뭘까
수풍정괘(水風井卦䷯)의 정(井)은 우물이다. 옛날에 동네마다 공동 우물이 있었다. 그 우물을 비가 많이 온다고 넘치지도 않았고,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았다. 겨울에도 얼지 않았고 여름에는 냉장고 물처럼 차가웠다. 이렇게 변화없이 항상성이 유지돼야 좋은 우물이다.
수풍정괘(水風井卦䷯)를 보면 아래에 풍(風☴)이 있고 위에 수(水☵)가 있다. 손(巽)괘인 풍(風☴)은 ‘바람’, ‘나무’, ‘겸손’이다. 감(坎)괘인 수(水☵)는 ‘물’, ‘수렁’ ‘역경’이다. 겸손하게 길러서 역경을 극복해야 되는 상이다. 수풍정괘(水風井卦䷯)가 말려서 뒤집힌 도전괘가 택수곤괘(澤水困卦䷮)다. 서괘(序卦)전에 따르면 위로 올라가서 곤궁해지면 반드시 아래로 내려오게 마련이므로 곤(困)괘 다음에 정(井)괘를 놓았다고 말한다. 곤괘는 연못의 물이 아래로 빠져 지하수가 되어 고갈된 상이고, 정괘는 지하수를 파서 샘물이 솟으면 그 물을 두레박으로 퍼올려야 되는 상이다.
수풍정괘(水風井卦䷯)의 음양이 바뀐 배합괘는 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다. 교육으로 말하면 정괘(井卦)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돼 있는 능력이나 자질 등을 찾아서 잘 퍼올려 주는 것이다. 서합괘의 서(噬)는 씹거나 깨무는 것이고, 합(嗑)은 입을 다무는 것이다. ‘씹거나 깨물어서 입을 다무는 것’은 처벌ㆍ교화와 관련있다. 일상생활에서 누군가에 대해서 뒷담화로 비난하고 비판하는 것을 ‘씹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사적이든 공적이든 얼마나 말들이 많고 씹고 깨물고 하는가. 입안에 든 것을 씹지 않고 입을 다물 수는 없다. 확실하게 씹어야 입을 다물 수 있다. 처벌은 그 당사자를 교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사형(死刑)마저 나머지 사람에 대한 범죄 예방과 교화의 의도가 있다. 모든 처벌과 감옥에 가두는 형벌은 근본적으로 보면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고, 일종의 사회화다. 본질적으로 근대의 제도적 교육이 목적하는 바와 같다.
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가 말려서 뒤집힌 도전괘는 산화비괘(山火賁卦䷕)다. 비괘(賁卦䷕)는 ‘빛나고 꾸미고 열매 맺는’ 상이다. 내면의 능력과 자질이 잘 퍼올려지고, 처벌과 교화를 적절하게 받아서 잘 길러지면, 결과적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빛나는 인재가 될 수 있다.
수풍정괘(水風井卦䷯)의 속에 있는 효(234/345)로 재구성된 호괘는 화택규괘(火澤睽卦䷥)다. 규괘(睽卦)는 ‘반목(反目)’, ‘어긋남’이다. 인간 사회에서 우물을 파서 여러 사람들이 마실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알맹이가 인간 관계의 반목이나 어긋남, 갈등 등을 해결하는 것과 같다.
수풍정괘의 괘사(卦辭)를 보자.
‘읍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으니 줄어들지도 않고 늘어나지도 않으며 오고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 우물을 사용한다. 거의 이르렀으나 우물에 두레박줄을 다 내리지 못하고서 두레박이 깨어졌으니 흉하다’
좋은 샘물을 찾는 것은 어렵다. 그 샘물을 중심으로 돌이나 나무를 쌓아 우물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다. 마을은 이래저래 개발하여 바꿀 수 있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우물이라면 바꾸기 어렵다. 우물이 줄거나 늘어난다면 지하수의 샘물이 아니라 지표수다. 마을의 공동 우물은 늘지도 줄지도 않는 영원성, 누구나 마실 수 있는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요즘은 수도세를 내고 돈을 주고 물을 사먹는다. 옛날에 나그네가 남의 동네 우물에서 물 한 바가지 먹는다고 돈을 받지 않았다. 어느 집에서 우물을 더 많이 쓴다고 그 비용을 별도로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재산을 늘리려고 공동 우물을 사유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우물을 파다가 중도에 그만 두면 아무 소용이 없다. 우물을 다 파고 깨끗한 물이 항상 고여 있고, 두레박으로 퍼올려서 마셔야 우물의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물’은 뭘까. 개인으로 보면 인간의 내면이라 할 수 있다. 내면의 샘물을 잘 찾아서 우물을 만들고, 그 우물이 잘 퍼올져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상부상조가 돼야 한다.
공동체로 보면 모두가 공유하는 인간 관계의 망(網)이 우물이 아닐까. 크고 작은 공동체가 공유하는 인간 관계의 망은 우물처럼 잘 형성되면 그 영원성과 보편성이 유지돼야 한다. 아무리 쓰도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으면서 공동체를 공유하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누군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두레박의 줄을 끊거나 두레박을 깨거나, 우물의 뚜껑을 덮거나 우물에 독을 뿌리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인간 관계 망에 관련된 인재의 발굴ㆍ육성ㆍ처벌ㆍ교화ㆍ사람들 간의 반목 등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흉하게 된다.
‘초구, 우물에 진흙이 있어 먹지 못하니 오래된 우물에는 짐승(새)도 없다’ 우물에 진흙이 있다는 것은 물이 빠져버려 없다는 것이다. 또는 폐기되어 짐승도 물 먹으러 오지 않는다는 모습이다. 개인의 소질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다. 공동체일 경우 인간 관계의 기본조차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다. 초구가 변하면 수천수괘(水天需卦䷄)가 된다. 수괘(需卦)는 ‘기다림’, ‘자양(自養)’이다. 샘물을 찾으면서 스스로 기르면서 기다려야 한다.
‘구이, 우물 바닥에 물이 나오는 구멍이나 붕어에게만 댈 수 있고 두레박이 깨어져 샌다’ 우물로 치면 이제 샘물을 찾은 단계다. 개인의 소질을 좀 계발했는데 그 수준이 우물안 개구리(정저지와井底之蛙)다. 공동체일 경우, 인간 관계가 좀 형성되기 시작했는데, 두레박이 깨어져 물이 새는 것처럼 아직 허술한 부분이 많다. 구이가 움직이면 수산건괘(水山蹇卦䷦)가 된다. 건괘(蹇卦)는 ‘절름발이’, ‘궁핍’이다. 우물이든 개인이든 공동체든 아직 극복하고 해결해야 일들이 많다.
‘구삼, 우물이 깨끗한데도 먹지 않아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슬퍼하나, 길어서 쓸 수 있으니 왕이 현명하면 함께 복을 받을 것이다’ 우물이 만들어지고 샘물도 깨끗하게 고이는 모습이다. 능력이나 소질이 계발되어 역량이 제법 축적된 상태다. 공동체일 경우 인간 관계나 조직 구성이 잘 갖춰져 쓸 만한 단계가 됐다. 하지만 아직 개인이나 공동체 조직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당사자나 이를 좀 아는 사람들이 볼 때는 슬프고 안타까울 수 있다. 이런 경우 권력자 또는 전문가나 발이넓은 능력자가 이를 알고 쓰면 쓰는 사람과 쓰이는 사람에게 모두 복이 된다. 구삼이 움직이면 중수감괘(重水坎卦䷜)가 된다. 감괘(坎卦)는 ‘수렁’, ‘지속적 역경’이다. 우물이 깨끗한데도 사람들이 먹지 않아 아직 극복해야 할 역경이 끝나지 않았다.
‘육사, 우물을 수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우물도 다 만들었고, 샘물도 깨끗하게 고였는데 완벽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먹지 않아 우물을 미진(未盡)한 점을 수리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점검하면서 보완하는 것이다. 허물이 있을 리가 없다. 육사가 움직이면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과 된다. 대과(大過)는 ‘큰 지나침’이다.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무리하게 움직이면 오히려 지나치게 된다. 과유불급이다.
‘구오, 우물이 달고 깨끗하여 차가운 샘물을 먹는다’ 우물로서 기능을 온전히 한다. 우물이 깨끗하고 사람들도 퍼올려서 마신다. 능력과 자질이 잘 계발되어 인정받고 인재로 잘 쓰인다. 공동체일 경우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고 이용하는 사람도 많고 평판도 좋다. 구오가 움직이면 뢰풍항괘(雷風恆卦䷟)다. 항괘(恒卦)는 일월(日月)과 같은 ‘항상성’, ‘만물의 항구한 생명활동’이다. 우물의 잘 쓰이고 있다면, 개인이나 공동체가 능력이 있고 잘 활용되고 있다면 그것의 지속성과 보편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육, 우물을 긷고서 덮지 않음이니 믿음이 있어서 크게 길하다’ 우물이 좋고 사람들이 마시고 있다면, 마음껏 마시도록 뚜껑을 덮지 않으면 더욱 크게 길한 일이다. 상육이 움직이면 중풍손괘(重風巽卦䷸)다. 크게 길한 것이 위에 있다면 크게 이룬 것이다. 그렇다면 겸손해야 한다.
6~70년대만 해도 시골 마을에는 공동 우물이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거의 마을 한 가운데쯤 큰 우물이 있었다. 마을에서 가장 넓은 공터도 우물 근처에 있었다. 아이들은 주로 그 공터에서 놀이를 했다. 공터 옆으로 동네 위쪽 산골짜기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개울물이 있었고 거기엔 공동으로 쓰는 큰 빨래터가 있었다. 우물과 빨래터, 공터가 있는 공간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우물은 주로 동네 아낙네들이 많이 사용했다. 우물가에서 쌀이나 나물을 씻었다. 집안에서 쓸 물을 동이에 이고 가기도 했다. 동네 아낙네 중에는 물동이를 이고 가는 데 달인이 된 분도 꽤 많았다. 물동이를 이고 두 손을 안 잡는 것은 물론 거의 뛰다시피 다니는 분도 있었다. 동네에 떠도는 소문이나 좋거나 나쁜 이야기들이 우물가에서 오고갔다. 식구들이 모여 밥 먹는 자리에서 우물가에 들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어머니가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 어머니는 이야기 당사자의 표정과 목소리를 흉내내면서 전했는데, 그게 무척 재미있었다. 품앗이를 구하거나 서로 도움을 요청하고 주는 일도 우물가에서 이뤄졌다. 남정네들이 우물을 사용할 때는 쇠죽 끓일 물을 퍼오거나 집안에 잔치가 있어 물이 많이 필요할 때였다. 양쪽에 물통을 매단 물지게를 썼다. 물지게를 처음 메었을 때 물이 출렁거려 중심 잡기가 쉽지 않았고, 집에까지 가는 도중에 물이 많이 쏟아져 물통에 반밖에 없을 때도 있었다.
근대화가 되면서 동네 뒤쪽에 큰 물 저장고를 만들고 파이프를 묻어서 집집마다 물이 들어오게 하는 수돗물이 생겼다. 공동 우물을 사용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었다. 그러다 겨울에 파이프가 얼어터지는 등 저수 장치나 배관에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이럴 때면 우물을 다시 쓰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안 쓰던 공동 우물의 물을 다 퍼내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상수도가 없을 때 마을의 공동 우물은 매우 중요했다. 좋은 우물이 없다면 마을을 형성하기 어렵다. 서양에서도 우물은 중요했을 것이다. 서양 논리학에 ‘우물에 독 뿌리는 오류’가 있다. 원천 봉쇄의 오류다. 정치인들 중에 가끔 이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이 있다. 몰라서 범한다기보다 오류인 줄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그러는 경우가 많다. 얘기도 하지 말고, 협력도 하지 말자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물은 집집마다 배관으로 공급된다. 집 안에서도 주방, 화장실, 베란다 등으로 다시 연결되어 어디서든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온다. 취수(取水)하는 마을의 단위가 커졌다. 몇 십만, 몇 백만 명이 먹을 물을 한꺼번에 모아서 정수(淨水)하고 펌프질하여 핏줄같은 배관을 통해 건물이나 가정으로 보낸다. 물은 배관을 타고 30층, 50층, 123층까지 올라간다. 너무나 편리하다. 단, 상수도 체계가 파괴되는 자연 재난이나 전쟁이 일어난다면, 편리함에 비례하여 아찔할 만큼 혼돈과 아수라장에 빠질 수도 있다.
오늘날, 옛날 마을의 공동 우물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무얼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곳이 아닐까. 현대인들은 교회, 절, 카페, 각종 모임 등을 통해 옛날 우물과 같이 상부상조하고 소식과 정보를 나누면서 친밀감ㆍ정서적 유대감ㆍ소속감ㆍ심리적 안정감 등을 얻는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클럽을 ‘물 좋다’고 비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실 커피나 술이나 구성 비율로 따지면 거의 물이다. 카폐나 나이트에 물 마시러 가는 거다. 물 마시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고, 즐기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1인 가구가 늘어나고 가족마저 거의 해체 수준이다. 사이비(似而非)든 정통이든 종교적 모임만큼 인간의 근원적인 불안감과 두려움을 심리적으로 안정시켜 주고, 생존을 위해 최소한의 상부상조를 베풀어주는 공동체가 있을까.
<참고 문헌>
[주역전해], 김경방 여소강, 심산
[도올주역강해], 도올 김용옥, 통나무
[대산주역강해], 대산 김석진, 대유학당
[경기홍역학회], 철산 주역강의
'주역으로 글쓰기 > 글쓰기로 자강불식하는 주역(두마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2) 씹다 (0) | 2023.04.21 |
---|---|
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1) (0) | 2023.04.20 |
우물 (2) | 2023.04.12 |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 어떻게, 무엇을 크게 소유할 것인가(완결) (2) | 2023.04.09 |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 크게 소유함이니 크게 형통하다(1) (1) | 2023.04.0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