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 어떻게, 무엇을 크게 소유할 것인가(완결)
대유(大有)는 크게 소유함이니 크게 형통하다. 대유(大有)는 유(柔), 즉 부드러운 음효(陰爻)가 가장 높은 자리를 얻고 크게 가운데에 있으며 상하가 응한다. 그 덕이 강건하고 문명하며 하늘에 응하여 때에 맞게 행한다. 불[火☲]이 하늘[天☰] 위에 있다. 군자가 보고서 악(惡)을 막고 선(善)을 드날려서 하늘의 아름다운 명을 따른다.
크게 소유하는 것이 크게 형통하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크게 소유할 수 있는 조건이다. 크게 소유하려면 부드럽고 수용적인 지도자가 높은 자리를 얻고 크게 중용의 도를 지켜야 한다. 또 상하 계층이 서로 상응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그 덕이 아래로는 하늘이나 사시사철의 흐름처럼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강건해야 한다. 또 위로는 이성적으로 밝게 함으로써 문명(文明)해야 한다. 공동체의 지도자나 지배층은 끊임없이 악을 막고 선을 쌓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대유괘의 중심인 육오(六五)의 지도자는 중지곤괘(重地坤卦) 문언전에 나오는 곤(坤)의 덕을 가져야 한다. 즉 “지극히 유순하고 움직임에 강하고, 지극히 고요하되 덕이 방정(方正)하며, 이익을 주장하여 떳떳함(중용)이 있으며, 만물을 머금어 화함이 빛나니 그 도가 순(順)하고 하늘을 이어 때로 행함”이 있어야 한다. 뒤따라 나오는 선(善)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는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과 바로 연결된다.
대유괘(大有卦䷍)는 괘의 순서로 보면, 동인괘(同人卦䷌) 다음이다. 서괘전(序卦傳)에는 “남과 함께하는 자에게는 물건이 반드시 따르기 때문에 대유괘(大有卦䷍)로 받았다”라고 하였다. 기업이든 나라든 크고 많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동인괘를 말아서 뒤집은 도전괘(倒顚卦)가 대유괘다. 동인(同人)의 시간 흐른 뒤에 대유(大有)가 따른다. 대유괘(大有卦䷍)의 음양을 바꾼 배합괘(配合卦)는 수지비괘(水地比卦䷇)다. 대유괘(大有卦)가 밖으로 크게 소유하는 것이라면, 비괘(比卦)는 안으로 상하가 서로 도우고 친한 것이다. 수지비괘(水地比卦䷇)를 말아서 뒤집은 도전괘는 지수사괘(地水師卦䷆)다. 대유괘의 또다른 이면이다. 사괘(師卦䷆)는 ‘군대’, ‘무리를 거느린 장수’다. 크게 소유하려면 전쟁을 준비하는 군사처럼 모두 협력하고 단결해야 하는 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유괘(大有卦䷍)의 속효(234/345)만으로 재구성한 호괘(互卦)는 택천쾌괘(澤天夬卦䷪)다. 쾌괘는 ‘결단’, ‘단호함’이다. 크게 소유하는 데는 어쩌면 ‘결단’이 핵심적인 알맹이라 할 수 있다.
초구, 아직 해로운 것과는 사귐 즉 관계가 없으니, 허물이 있지 않으나 어렵게 여기고 조심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크게 소유하려면 처음, 즉 기초 단계에서는 해로운 것과 관계를 맺지 않아야 한다. 초구는 구이와 비(比)를 이루지도 않고, 구사와 응(應)함도 없지만 홀수 즉 양(陽)의 자리에 있는 양효이기 때문에 자리가 바르다. 초효가 움직이면 화풍정괘(火風鼎卦䷱)다. 정괘(鼎卦䷱)는 ‘가마솥’, ‘화합’, ‘새로운 시작’의 의미다. 움직여도 형통하다. 정괘의 초효도 나쁜 것을 꺼내는 데 이롭고 허물이 없다.
구이, 큰 수레에 실었으니 가는 바가 있으면 허물이 없다. 구이는 중(中)의 자리를 얻고 구오(九五)와 응한다. 큰 수레에 싣는 것은 대유괘에서 구이의 임무다. 많이 싣기 위해서는 가운데에 쌓아야 실패하지 않는다. 크게 소유하려면 중용을 지키는 자세가 중요함을 말하고 있다. 구이가 움직이면 중화리괘(重火離卦䷝)가 된다. 리괘(離卦䷝)는 ‘집착’, ‘밝음’, ‘지혜’다. 움직여도 이롭고 형통하고 길하다.
구삼, 공이 천자에게 조공을 바치지만 소인은 그러하지 못하다. 크게 소유하려면 소인배의 짓은 하지 말라는 주의다. 크게 소유하려는 욕심이 강하면 남한테 베풀 줄 모르고 인색하기 쉽다. 그렇게 해서는 크게 소유하는 그릇이 될 수 없다. 구삼이 움직이면 화택규(火澤睽)가 된다. 규괘(睽卦)는 ‘사팔눈’, ‘반목’이다. 움직이면 좋지 않다. 크게 소유함에 있어서 ‘반목’과 ‘갈등’을 경계해야 한다.
구사, 지나치게 성대하지 않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홀수 자리에 양효로 바르다. 구사는 군주를 모시는 양강(陽剛)한 대신(大臣)이다. 과유불급이다. 가득 채우려는 욕심을 경계하고 있다. 크게 소유하려면 크게 소유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이를 아는 것이야말로 매우 밝은 지혜다. 구사가 움직이면 산천대축괘(山天大畜卦䷙)가 된다. 대축(大畜䷙)은 크게 쌓는 것이다. 크게 쌓으려면 그침[☶] 즉 절제가 필요하다.
육오, 믿음으로 서로 사귀니 위엄이 있으면 길할 것이다. 화천대유괘(䷍)에서 유일한 음효이다. 부드럽지만 중(中)을 득하고 있으며 구이(九二)와 응하고 구사(九四)ㆍ상구(上九)와 비(比)를 이루고 있다. 부드럽게만 해서는 안 되고 위엄을 갖추기도 해야 신하가 쉽게 여기거나 태만하거나 능멸하지 않는다. 육오가 움직이면 중천건괘(重天乾卦䷀)가 된다. 움직여도 강건하고 길하다.
상구, 하늘에서 도우니 길하여 이롭지 않음이 없다. 중(中)을 얻지도 못하고 정(正)의 자리도 아니지만 육오와 비(比)를 이루고 있다. 대유괘(大有卦䷍)의 끝의 자리에 있으면서 양강(陽剛)하다. 하지만 넘치지 않고 육오를 따른다. 상현(尙賢), 즉 어진 사람을 존경하는 모습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상구가 움직이면 뢰천대장괘(雷天大壯卦䷡)다. 대장(大壯)은 ‘왕성’, ‘무성’이다. 대유(大有)의 끝자리에서 더 무성할 필요가 없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절제해야 한다.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의 효사는 대유(大有)의 자세로 정리해 볼 수도 있다. 크게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로운 것과 관계 맺지 않아야 한다. 큰 그릇으로 중용을 잘 지켜야 한다. 남한테 베풀고 반목하지 않아야 한다. 지나치게 채우려거나 성대하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부드러움과 위엄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크게 소유해도 넘치지 않고 현인을 존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무엇을 크게 소유해야 할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재화(財貨), 쉬운 말로 돈이나 돈 되는 것을 크게 소유하고 싶다. 하지만 소유의 대상이 무엇이든 소유 의식과 무소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는 회사 이름 때문에 일반인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알려졌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부동산개발회사 ‘성남의뜰’의 지분에 참여한 자산관리 회사 이름이 화천대유다. 회사 로고도 대유괘(大有卦䷍)를 그대로 쓰고 있다.
유(有) 자는 ‘또’, ‘오른손’을 뜻하는 ‘우(又)’와 ‘고기’를 뜻하는 ‘월(月-肉)’이 합쳐진 글자다. 한자(漢字)가 만들어질 무렵에 ‘고기’는 뭔가 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었으리라. 현대사회와 성격이나 규모는 다르지만 ‘유(有)’가 소유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오늘날과 같은 사유(私有) 제도가 있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문명 또한 발달하지 않았을 때이니 음식이든 재물이든 개인이 크게 소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도덕경』에 나오는 유(有)를 보자. 1장에 “무(無)는 천지의 시작이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다. 그러므로 언제나 무를 가지고는 세계의 오묘한 영역을 나타내려 하고, 언제나 유(有)를 가지고는 구체적으로 보이는 영역을 나타내려 한다”는 말이 나온다.
유무(有無)는 인간의 관점이다. 진짜 아무것도 없을 수는 없지만, 천지(天地)의 시작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만물(萬物)에서 물(物)은 세계 자체나 광물이나 무기물까지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란 말에서 보듯이 물(物)은 애초에는 생물체만을 의미했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대유(大有)’는 온갖 생물 자원이 풍부하다는 뜻이다. 동식물이 있으면 ‘있다’하고, 풀과 나무나 동물 등이 하나도 없으면 ‘없다’라고 했을 것이다.
유(有)는 인위(人爲)의 산물을 의미할 수도 있다. 자연 그대로 놔두는 것을 무위(無爲)라 하고, 인간이 행위하는 것을 유위(有爲)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보면 유(有)는 문명이다. 뭔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행위하여 만든 마을이나 국가가 된다. 따라서 대유(大有)는 만물이 풍부한 문명 또는 마을이나 나라가 된다.
사람들은 오늘날 무엇을 소유하려고 하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 대상은 부동산ㆍ증권ㆍ원자재ㆍ달러다. 통틀어 자산(資産)이라고 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 만물은 모두 자산이 된다. 문명으로 만들어지는 재화뿐만 아니라, 온갖 식물이나 동물, 무생물, 광물, 물, 공기까지. 공유든 사유든 많이 소유하면 부자가 된다. 과거에는 소유 대상이 아니었던 것들도 요즘은 소유권을 가지려고 한다. 이러한 소유 의식은 대체로 서구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존 로크의 논증이 대표적이다.
『통치론』에 나오는 로크의 논증을 보자. “하나님께서 이 세계를 사람들에게 공유(公有)물로 주셨다. 이를 이용하도록 이성(理性)도 부여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다. 공유의 상태에 있으면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에 자신의 몸으로 노동을 하여 취하면 자기 소유가 된다.” 아주 단순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이와 관련돼 있다. 소유의 대상과 범위를 점점 확대하는 문제, 공유를 줄이고 사유를 늘리는 문제, 소유물을 상속하는 문제, 빈부 격차, 소유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법과 권력…….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에는 권력과 돈이 있는 개인이나 나라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 인간 세상에 공정이나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정이나 정의는 약자들끼리 지켜야 하는 덕목이다. 강자들이 말하는 공정이나 정의는 그저 진실을 속이는 수사(修辭)적 표현에 불과하다. 끝없이 폭주하는 인간의 소유 욕망이 모든 사회 문제의 뿌리가 아닐까.
소유의 대상에 따라서 크게 소유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소유의 대상이 만물(萬物)이라면,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크게 소유할 수 있다. 소유의 대상이 재화(財貨)라면 크게 소유하는 것은 빈부격차ㆍ전쟁 뿐만 아니라 현대인 온갖 정신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소유의 대상이 선(善)ㆍ덕(德)ㆍ아름다움이면 크고 많을수록 좋지 않을까.
<참고 문헌>
[주역전해], 김경방 여소강, 심산
[도올주역강해], 도올 김용옥, 통나무
[대산주역강해], 대산 김석진, 대유학당
[철학VS철학], 강신주, 그린비
[경기홍역학회], 철산 주역강의
[통치론], 존 로크, 삼성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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