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천화동인(天火同人䷌), 대동단결의 속내는 어떨까
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利君子 貞
사람을 같이 하는 것을 들에서 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의 바름이 이로우니라.
初九 同人于門 无咎
초구, 동인을 문에서(문을 나와, 문밖에서) 함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六二, 同人于宗 吝
육이, 동인을 종친에서(종족끼리) 함이니 인색하도다
九三, 伏戎于莽 升其高陵 三歲不興
구삼, 군사를 숲에 매복시키고 그 높은 언덕에 올라 3년을 일어나지(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다.
九四, 乘其墉 弗克攻 吉
구사, 그 담에 오르되 능히 치지(공격하지) 아니하니(못하니) 길하니라.
九五, 同人 先號咷而後笑 大師克 相遇
구오, 동인이 먼저는 울부짓다가 뒤에는 웃으니, 큰 군사로(군대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
上九, 同人于郊 无悔
상구, 동인을 교외에서 함이니 뉘우침이 없느니라.
197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애 어른 할 것없이 마을 단위로 ‘동인(同人)’해서 일을 많이 했다. 애들은 등교부터 동인(同人)해야 했다. 우물과 빨래터가 있던 마을 공터에 다 모여야 학교로 출발했다. 먼저 가도 안 되고, 늦게 가도 안 됐다. 마을에서 출발할 시간인데 안 나온 아이가 있으면 집에 데리러 갔다. 다 나온 게 확인되면 1학년부터 차례로 줄을 서서 출발했다. 출발하자마자 ‘새벽종이 울렸네’를 시작해서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새마을 노래를 불렀다. 일요일마다 온동네 학생들이 모두 나와 대동단결하여 마을 청소도 했다. 웬만한 일들은 모두 모여 함께 했다. 한 아이가 잘못해도 모두가 동인(同人)하여 단체기합을 받았다.
어른들도 동인(同人)해서 마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마을 일들 중에는 불필요한 일도 있었고, 개인이 각자 해야 될 일도 있어 그 혜택이 공평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른들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농촌 마을에서 상부상조해야 할 일이 많지만, 공동으로 일을 해서 그 혜택마저 공평하게 나누거나 공동 소유를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개별적으로 보면 불공정한 면들이 많았으리라.
‘동인(同人)’은 ‘어떤 일에 뜻을 같이하여 모인 사람’이다. 문제는 ‘동(同)’이다. 가장 강하게 하나됨이 필요한 곳은 어디일까. 전쟁터다. 적 앞에서의 분열은 죽음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군대다. 군대는 좀처럼 개인적인 특수함에 따른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먹고 자고 싸는 것까지 똑같이 일사분란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개개인의 특수성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한 명의 군인이 죽으면 다른 한 명의 군인으로 대체된다. 병사로서 한 명은 A든 B든 차이가 없다.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이와 비슷한 것은 군부독재나 전체주의다. 외부 세력과 싸우는 공동체나 정당 등은 단일대오를 요구한다. 싸울 필요가 없는데도 일부러 적을 만들어 내부의 불만을 봉합하거나 차이와 다양성을 밟아버리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차이ㆍ특수함ㆍ다양함ㆍ자유로움을 인정하면서 공동체 전체를 다스릴 능력이 없거나 그러기 싫을 때 이런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나치 정권 초기에 독일에 있다가 미국으로 탈출한 유태인 철학자 아드르노에게 아우슈비츠는 트라우마였다. 전체주의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아드르노가 도달한 전체주의 기원은 ‘이성(理性)’이었다. 이성 즉 합리성의 바탕은 ‘개념(concept)’이다. 개념으로 뭔가를 포착하기 위해서 이성은 개체들이 가진 복잡성과 차이를 제거하고 획일화해야만 한다. ‘인간’이란 개념에 붙잡혀 있는 개개인은 사실 하나도 같지 않고 다 다르고 복잡하다. 그런데 ‘인간’이라고 개념화하는 순간 그러한 차이와 특수성은 말끔하게 제거된다. 하이데거도 나치당에 자발적이고 지속적으로 기부금을 헌납했던 열성적인 당원이었다고 한다. 그도 이성에 바탕한 합리적 사고의 결론으로 나치와 하나가 되었을까.
아드르노와 같은 입장이었던 아렌트에게도 전체주의는 화두(話頭)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유태인 학살의 총 책임자였던 아히이만의 재판 과정을 보고 놀랐다. 아히이만은 히틀러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려고 했던 ‘근면성실’하고 평범한 공무원 관료에 불과했던 것이다. 문제는 행정 조직의 공문으로 지시되는 히틀러 명령 그 자체에 대한 ‘무사유(無思惟)’였다. 그녀는 무사유가 전체주의의 기원이라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찰 등의 공무원을 하면서 친일했던 사람들도 이런 논리로 정당화가 가능하리라. 그저 공무원으로서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지금도 이런 일들은 많다. 공문을 통해서 집행을 요구하는 내용들이 상식에도 맞지 않는데, 공문만 철저하게 수행하면 그뿐이고 그 너머의 일은 나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도 ‘아무 생각없이’ 하나가 되는 사람들이 많다.
유명한 영화 배우나 정치인, 사업가들이 자신과 다른데도 동일시하는 경우가 있다. 동일시함으로써 자신도 영화 배우나 재벌이 된 것처럼 살짝 착각하는 것이 아닐까. 히틀러에 열광했던 독일 국민들도 자신들이 곧 ‘작은 히틀러’가 되어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하는 정치인이 있고, 그 정치인과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도 있다. 난감하다. 이 정치인과 이 사람들을 반대하면 ‘반국가’적인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이들도 이러한 점을 알리라. 참으로 고약하다. 신(神)은 죽은 지 오래고, 현실 사회에서 국가가 신(神)의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동이불화(同而不和)를 생각해 보자. ‘군자는 화합하되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되 화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공자는 왜 ‘화(和)’에 비해 ‘동(同)’을 부정적으로 볼까. 엄밀히 말해 ‘동(同)’은 가능하지 않다. 같아진 듯이, 하나가 된 듯이 함께 일을 하는 것이지, 실제로 같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동(同)’에는 원천적으로 폭력과 강제가 들어있다. 이에 반해 ‘화(和)’는 여러 개체가 자신의 속성을 유지하면서 서로 섞이어 더 좋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동의보감에 ‘생지황’을 설명하면서 ‘화박하즙(和薄荷汁)’이나 ‘화생강즙(和生薑汁)’이란 표현이 나온다. 생지황을 박하즙이나 생강즙과 섞어 먹어도 효과가 좋다는 뜻이다. 생지황에 박하즙을 넣는다고 해서 그 둘이 같아지거나 하나가 되지는 않는다. 여러 사람이 섞여서 더 발전적이고 좋은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여러 사람이 모였는데 말이나 행동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경우도 있다.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말도 ‘화(和)’와 ‘동(同)’을 생각하게 한다.
‘동인(同人)’은 필요할 때 해야 한다. 나라나 공동체를 만드는 초기에 동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동인이 필요하지 않을 때 하면, 그것은 독재나 전체주의가 된다. 동인(同人)이 필요할 때 하더라도 구성원들의 자질이나 능력에 따라 지위ㆍ권력ㆍ역할 등이 잘 조율돼야 한다. 또 구성원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동인(同人)을 할 때는 구성원들의 차이와 특수성ㆍ개별성이 존중받지 못하고 무시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제 동인괘(䷌)의 괘사를 보자. ‘사람을 같이 하는 것을 들에서 하면 형통하리니,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이로우며, 군자의 바름이 이로우니라’. 동인괘에서 문(門)ㆍ종(宗)ㆍ교외(郊外)에 비해 ‘들[야(野)]’은 가장 멀고 넓은 곳이다. 같이 일을 하는데 밀실에서 몇 사람끼리만 하면 좋지 않다.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이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게 광명정대하게 해야 형통하다. 이렇게 할 때 큰 내와 같은 어려움이나 고난을 극복할 수 있고 그 결과로 얻는 이로움도 크다. 그 방법이나 절차 또한 모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바르게 해야 한다.
동인괘(䷌)의 효사(爻辭)를 보자. ‘초구, 동인을 문에서(문을 나와, 문밖에서) 함이니 허물이 없으리라’ 동인을 할 때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문(門)을 나와 가족이나 문중(門中) 아닌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다. 문을 나와 문 밖에서 동인을 한다는데 허물이 될 리 없다. 초효가 움직이면 천산둔괘(天山遯卦䷠)가 된다. 산(山☶)은 그침이다. 둔괘는 회피ㆍ물러남이다. 동인(同人)을 막 시작하는 때이면서 맡은 자리가 중요하지 않은데, 힘이 약해질 때는 나서지 말고 물러나 있어야 한다.
‘육이, 동인을 종친에서(종족끼리) 함이니 인색하도다’. 육이는 하괘의 중(中)이고 음효 자리에 음이라 정(正)하다. 또 구오(九五)와 정응(正應)을 이룬다. 구오와 정응을 이룬다고 구오하고만 같이하면 인색하다. 동인괘는 육이만 음(陰)이고 나머지 다섯 효는 모두 양이다. 육이는 다섯 개의 양들과 고루 함께 해야 대동(大同)이 깨지지 않는다. 한 명의 여자와 다섯 명의 남자가 같이 일을 할 때, 여자가 강하고 멋있는 한 명의 남자하고만 같이 하려 한다면 대동(大同)은 유지되기 어렵다. 육이가 움직이면 중천건(重天乾䷀)이 된다. 육이가 힘을 얻어 양강(陽剛)해지면 전체적으로 더할 수 없이 강건해진다.
‘구삼, 군사를 숲에 매복시키고 그 높은 언덕에 올라 3년을 일어나지(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다.’ 구삼은 양효 자리에 있어 정(正)하다. 하지만 상구(上九)와 응(應)을 이루지 못하고 적강(敵剛)이 된다. 육이(六二)와는 상비(相比)를 이룬다. 육이와 짝을 이루고자 구오(九五)를 치려고 3년 동안 매복하고 기다렸으나, 구오보다 힘이 약하고 구오를 치는 것은 의리에도 어긋나 행하지 못한다. 대동단결의 속내를 보는 듯하다. 균형과 절제가 깨진 그릇은 사금파리가 되듯이, 대동단결도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구성원 중에 누군가는 적(敵)이 되고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알아야 하리라. 구삼이 움직이면 천뢰무망(天雷无妄䷘)이 된다. 무망은 ‘신뢰’ㆍ‘성실’이다. 구삼이 힘을 빼고 부드러워지면 신뢰를 얻는다.
‘구사, 그 담에 오르되 능히 치지(공격하지) 아니하니(못하니) 길하니라.’ 구사(九四)는 중(中)도 아니고 정(正)도 아니지만, 양강(陽剛)으로 구오(九五) 바로 밑에 있는 대신의 자리다. 매복하여 기다리면서 구오를 치려고 하는 구삼보다, 담을 올라 구오를 넘볼 정도로 더 힘이 있다. 하지만 구오보다 힘도 약하고 의리에도 맞지 않아 치지 않는다. 이는 구삼의 매복보다 구오로 하여금 더 긴장하게 하여 대동을 위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게 만든다. 그래서 길(吉)하다. 구사가 움직이면 풍화가인(風火家人䷤)이 된다. ‘가인(家人)’은 여자가 중심이 되는 화목한 가정이다. 구사가 힘을 빼고 부드러워진 화목한 가정처럼 된다.
‘구오, 동인이 먼저는 울부짓다가 뒤에는 웃으니, 큰 군사로(군대로) 이겨야 서로 만나도다.’ 구오(九五)는 군주의 자리인데 중(中)이고 정(正)이면서 유일한 유효(柔爻)인 육이와 정응을 이룬다. 힘도 가장 강하고 의리에도 맞다. 힘이 있고 옳아도 대동(大同)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구삼이나 구사와 같은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싸워서 승복시키지 않으면 진정한 동인(同人)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게 싸워 이겨야 대동단결이 된다. 구오가 움직이면 중화리(重火離䷔)가 된다. 리괘는 찬란함이다. 구오가 힘을 빼고 부드러워지면 달라붙음으로써 찬란하고 빛나게 된다.
‘상구, 동인을 교외에서 함이니 뉘우침이 없느니라’. 상구는 중(中)도 아니고 정(正)도 아니다. 정응도 아니고 상비(相比)를 이루지도 못한다. 양강(陽剛)이지만 구삼ㆍ구삼ㆍ구오 등과 분쟁에 휘말리지도 않아 후회도 없다. 상구가 움직이면 택화혁(澤火革䷰)이 된다. 상구가 힘을 빼고 부드러워지면 문명과 기쁨이 따르고 변화와 혁명이 일어난다.
64괘에서 모두 같은 효(爻)로 된 괘는 중천건괘(重天乾卦䷀)와 중지곤괘(重地坤卦䷁)다. 건괘는 한없이 강건하고 창조적이며, 곤괘는 한없이 부드럽고 수용적이다. 이는 이상적인 것으로 인간 사회 현실에서 이런 경우는 없다. 양효(⚊)가 하나이고 나머지가 모두 음효(⚋)인 괘와 그 반대인 괘는 모두 12개다. 택천쾌䷪, 화천대유䷍, 풍천소축䷈, 천택리䷉, 천화동인䷌, 천풍구䷫, 지뢰복䷗, 지수사䷆, 지산겸䷎, 뢰지예䷏, 수지비䷇, 산지박䷖. 그 중에서 천화동인괘(天火同人卦䷌)를 중심으로 보자. 동인괘(䷌)는 위에 하늘이 있고 아래에 떠오르는 불(태양)이 있다. 만물이 활동하여 모이는 상이다. 하괘의 중심이 유효(柔爻)로 부드럽고 수용적이면서 나머지가 모두 양강(陽剛)하여 이와 짝이 되려 할 때 ‘동인’하기에 최적일 것 같다.
동인괘(䷌)를 말아서 뒤집은 도전괘는 화천대유괘(火天大有卦䷍)다. 하늘 위에 불(해)가 있는 모습이다. 동인괘보다 더 크고 넓게 밝음이다. 여기서 ‘유(有)’는 오늘날의 ‘소유(所有)’가 아니라 무(無)에 대립되는 문명이고 국가일 가능성이 크다. 국가나 문명이 크고 풍요로워지려면 동인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크게 밝아져야 하리라.
동인괘(䷌)의 음양을 바꾼 배합괘는 지수사괘(地水師卦䷆)다. 사괘는 군대ㆍ장인(전문가)의 의미다. 동인을 바탕으로 하되 명령에 대한 강한 복종이 요구된다. 양강(陽剛)한 한 장수의 명령에 다섯 개의 유효(柔爻)가 따르는 상이다. 양강이 하괘의 중심이라 힘들고 험난한 면이 있다. 동인괘의 효사에도 전쟁ㆍ군대와 관련된 내용이 세 번 나온다. 동인은 전쟁이나 싸움과 관련이 깊다.
사괘(䷆)를 말아서 뒤집은 도전괘는 수지비괘(水地比卦䷇)다. 비괘(比卦䷇)는 친밀ㆍ동맹이다. 사괘에 비해 강효(剛爻)가 상괘의 중심에 있어 덜 힘들다. 전쟁 후에 요구되는 친밀과 동맹이라 할 수 있다. 비괘 역시 동인과 관련이 있다. ‘동인(同人)’은 그것이 필요한 상황에 따라 그 강도와 성격이 달라야 함을 알 수 있다. 전쟁인가,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인가, 나라나 공동체를 처음으로 세우거나 재건하는 상황인가에 따라 동인의 균형과 절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독재나 전체주의가 되어버린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군자(君子) 주이불비(周而不比)하고 소인(小人)은 비이불주(比而不周)’가 떠오른다. ‘군자는 두루 친하지만 편당을 하지 않으며, 소인은 편당을 하지만 두루 친하지 않는다.’ 친밀함도 넓고 두루 해야 바람직하다. 폐쇄적으로 밀실에서 자기편끼리만 동맹하는 것은 소인배다.
동인괘(䷌)의 안에 있는 효(2ㆍ3ㆍ4/3ㆍ4ㆍ5)로 재구성한 호괘는 천풍구(天風姤䷫)다. 구괘는 만남ㆍ조우(遭遇)다. 만남은 동인(同人)의 알맹이고 기본이다. 만나지 않고 어떻게 뜻을 같이하여 일을 하겠는가.
<참고 문헌>
[주역전해], 김경방 여소강, 심산
[도올주역강해], 도올 김용옥, 통나무
[대산주역강해], 대산 김석진, 대유학당
[철학VS철학], 강신주, 그린비
[경기홍역학회], 철산 주역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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