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뢰서합괘(火雷噬嗑卦䷔)(2) 씹다
‘씹다’의 기본적 의미는 음식 따위를 입에 넣고 윗니와 아랫니를 움직여 잘게 자르거나 부드럽게 가는 것이다. 의미를 확대하여 ‘공개적으로 비난함’의 뜻으로도 쓴다.
누굴 ‘씹는다’고 말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비난함’이다. 비난도 상대에 대한 일종이 처벌이다. 서합괘(噬嗑卦)에서 ‘옥(獄)’이 나온다고 해서 공적인 형벌에만 국한될 필요는 없다. 씹는 것이 형벌을 비유하듯, 옥(獄) 또한 비유일 수 있다.
꾸지람도, 밥을 굶기는 것도, 회초리로 때리는 것도, 방에 가두는 것도 처벌이다. 처벌을 하는 자는 가정에서는 부모이고, 학교에서는 교사이고, 사회에서는 국가 통치 작용을 하는 사법 기관이다. 처벌을 당하는 쪽은 잘못을 한 자녀ㆍ학생ㆍ국민이다. 처벌자, 처벌을 받는 자, 처벌 방법이 문제가 된다.
6~70년대에 대부분 가정교육이 엄격했다. 엄부자모(嚴父慈母)가 보편적이었다. 집안에 부모가 자식을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으면 동네 어른들이 나섰고, 문중에서 개입하기도 했다. 잘못한 자식이 아버지한테 맞는 것은 집집마다 매일처럼 일어나는 일상이었다. 잘못한 자식을 바로잡기 위해 밥을 굶기거나 방에 가두고 며칠 동안 바깥 출입을 못하게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학교에서도 잘못한 학생을 처벌하는 데 체벌을 안 하고 말로만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초등학교 때 봤던 교사의 체벌 장면이 아직도 선연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 졸업식 준비를 한다고 학생들이 강당에 많이 모였다. 시끄럽고 통제가 안 됐다. 화가 난 교사가 학생 한 명을 불러 한 손으로 뺨을 잡고 실내화를 벗어쥐고 때렸다. 밑창이 딱딱한 신발이었다. 볼이 발갛게 부어오르도록 여러 번 때렸다. 뭉둥이로 머리도 함부로 때려 맞자마자 밤처럼 볼록하게 부어오르는 게 예사였다. 집에 가서 말하면 부모한테 더 맞았다. 어떻게 했기에 선생한테 맞았나며. 적어도 이 시대의 부모와 교사는 일심동체였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잘못한 아이를 처벌하는 방법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자녀가 부모를 신고하고, 학생이 교사를 신고하는 법치주의를 부정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한두 살 먹은 아이도 아동도 청소년도 성인과 똑같이 법에 따라 처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가정 폭력이나 학교 폭력에 경찰과 변호사가 이미 많이 개입하고 있다. 아무리 법치주의 사회라도 모든 국민 개개인을 24시간 관찰하며 적법과 위법을 판정할 수는 없다.
성인의 경우, 죄를 지었을 때 처벌의 방법이 여러 가지다. 징역형, 벌금형, 사회봉사…훈계 방면도 있다. 처벌의 근본은 ‘행하지 못하게 함’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본능적인 욕구의 충동대로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어떤 행위가 법은 물론이고 소속된 사회의 일반적인 예의ㆍ도덕ㆍ관습 등에 어긋나면 행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과거에는 체벌로도 훈화, 잔소리로 많이 했다. 요즘은 할 수 있는 훈화, 잔소리도 잘 하지 않는다. 부모나 교사가 처벌의 방법으로 쓸 수 있는 것은 체벌 아니고도 많다. 말을 포함한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하여 잘 ‘씹어서’ 사회 구성원과 화합을 이루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나 교사의 경우 처벌자로서의 지위와 권한, 능력과 지혜, 설득력 등이 중요하다. 처벌을 받아야 하는 자가 잘못을 해 놓고도 쉽게 승복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 뻣뻣하고 질기거나 상식도 논리도 없이 막무가내로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어렵더라도 조심하며 위태롭게 생각하기도 하며 잘근잘근 집요하게 잘 씹어서 화합하도록 해야 허물이 없고 길하다. 그렇게 하지 않아서, 성인이 되어 무거운 형벌을 범죄자가 되면 흉하다. 음식물을 잘 씹어야 몸이 건강하듯, 처벌을 잘 해야 사회가 건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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