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글쓰기, 창조하는 물음
공부를 잘 하고 싶은 욕망은 누구나 다 있다. 하지만 공부는 대체로 하기 싫다. 『최재천의 공부』를 읽다 보면 내가 했던 초ㆍ중ㆍ고등학교, 대학교의 공부마저도 제대로 된 공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단편적인 지식이 쌓이고 인식 능력이 확장되어 오늘의 나를 이루었으리라. 한편으론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어릴 때의 겪었던 여러 체험이나 놀이, 사람들과의 만남이 오히려 좋은 공부였고 그것은 알게 모르게 내 몸 구석구석에 기억으로 축적되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인용된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말이 떠오른다. “사회의 고통은 과목별로 오지 않는데 아직도 교실에서는 20세기의 방식으로 과목별로 가르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은 통섭과 융합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통섭과 융합이 필요하다. 공부는 학교에서만, 책이나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서만 아니라, 삶의 모든 국면이 공부이고, 그러한 공부는 직업 구분 없이 맥락에 따라 통섭ㆍ융합되어야 할 것이다.
공자, 맹자, 플라톤, 소크라테스, 왕필, 비트겐슈타인, 정약용, 이어령. 공부의 끝판왕이랄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성실하게 공부하는 태도는 어떻게 생긴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 요인은 유전자인가, 성장 환경인가.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태도가 대대로 누적되면 유전자에 새겨질 것이다. 이런 집안이라면 성장 환경 또한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공부에 최적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재천이 어린 자식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최재천의 공부』를 읽으면서, 읽기와 쓰기의 중요함을 새삼 느꼈다. 지금까지 읽기 쓰기를 지속적으로 해온 편이다. 인상적인 한 문장을 실마리로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시 한 편을 읽고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고, 영화 한 편을 보고 글을 쓰기도 했다. 시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한 편의 글을 쓰기도 했다. 요즘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한 편의 글을 꼭 쓰는 편이다. 책을 자연스럽게 집중해서 여러 번 읽게 되고, 속도도 빨라진다. 요약하는 능력, 글쓰는 능력도 늘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
『최재천의 공부』를 읽으면서 기획독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더 다지게 됐다. 지금까지는 독서 모임에서 정해진 대로 읽거나 그에 연결되는 책을 읽고 그에 대한 후기를 쓰는 편이었다. 최근 주역을 배우면서 기획 독서를 느슨하게 하고 있다. 공부의 방법으로서 글쓰기는 매우 효과적이다. 하나의 주제를 잡고 글을 쓰기 위해 수십 권의 책을 읽는 기획 독서는 더욱 집중하고 몰입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방법이다. 지금까지 좀 헐렁하고 엉성하게 공부의 방법으로 해왔던 글쓰기를 좀더 ‘빡세게’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챗GPT를 보면서 앞으로 이러한 인공지능 로봇이 엄청난 속도로 자기학습을 하여 발전할 것인데 공부는 왜 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무엇을 묻던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물으면 인공지능 로봇은 어떤 인간보다 빠르게 논리정연한 대답을 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큐레이터 권재진 교수는 질문하기를 공부하게 해야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인공지능은 물음에 대한 대답은 잘한다. 하지만 스스로 질문하지는 않는다. 질문 중에서도 그 누구도 하지 않은 ‘최초의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누구도 하지 않은 최초의 질문을 하고 그에 맞는 답을 찾아 무언가를 발명하거나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창의고 창조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공부하는 방법으로 읽기, 쓰기, 다음에 질문하기를 추가한다. 읽고 쓰지 않아도 끊임없이 묻는다면 훌륭한 공부가 되리라.
내가 좋아하는 시 이영광의 ‘물음’을 인용하고 싶다.
「물음」 이영광
넌 뭘 할 수 있니?
하는 물음에
온 집안이
온 동네가
온 나라가
아주
곤란하다
곤란이 매연같이 당연할 만큼
(매연도 이제 공기니까)
심히
곤욕이다
이래가지곤
넌 뭘 못하니?
하는 물음이 설 자리도
누울 자리도 없으니,
언제 사람이 되고
언제 또 사람이란 걸
벗어던지겠나
이래가지고 언제
넌 뭘 안하니?
이런 응용문제쯤
풀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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