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의 완전함
주역(周易)을 꿰뚫는 원리는 변함이다. 세상 만사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그뿐이다. 좋다고 좋기만 한 게 아니다. 나쁘다고 나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좋은 것은 나쁘게 변할 수 있다. 나쁜 것은 좋게 변할 수 있다. 주역의 괘도 좋은 괘는 나쁘게 변할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나쁜 괘를 받으면 좋게 변할 수 있음을 알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지닌 한계와 불완전함, 그리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데 있다.
알 아마리는 아랍 시의 거장이다. 그는 네 살 때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 눈이 보이지 않게 됐다. 알 아마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 덕분에 말을 듣는 귀와 기억하는 재능이 놀라울 정도였다고 한다. 티무르는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건설자다. 30대 청년부터 60대 노년에 죽을 때까지 전쟁과 정복을 멈추지 않았다. 티무르는 20대에 오른쪽 다리를 다쳐 절름발이였다. 마르틴 루터는 신경증이 있었고, 장 운동이 원활하지 못했던 변비 환자였다. 루터는 장에서 대변을 비워 내고, 역겨운 가톨릭 교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비워 낸 뒤에 느꼈을 법한 엄청난 안도감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바이런은 선천적인 장애가 있어 걷기가 힘들었다. 바이런은 기형인 발 때문에 복수심에 차서 시를 쓰게 됐다고 한다. 바이런은 놀라울 정도로 잘 생겼지만 장애를 이용하여 낭만주의 사조의 스타가 됐다. 헤리엇 터브먼은 미국 흑인운동가로, 수백 명의 흑인 노예를 탈출하도록 도와 ‘검은 모세’라고 불린다. 어릴 때 주인이 휘두른 저울추에 맞아 두개골이 골절된 뒤 소발작 뇌전증, 후천성 서번트 증후군이 나타나 엄청난 기억력과 지리적 지식을 갖게 됐다고 한다. 프리다 칼로는 선천성 장애와 대형 교통 사고로 인한 신체적 불편과 남편의 문란한 사생활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라고 평가한다.
알 아마리, 티무르, 마르틴 루터, 바이런, 헤리엇 터브먼, 프라다 칼로. 모두 크든 작든 신체적 장애나 결핍이 있었다. 불편이나 불완전함이 분발이나 성실함을 더 자극하여 더욱 큰 성취를 이루게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구양수가 ‘궁이후공(窮而後工)’이란 말을 했다. 곤궁해지고 난 뒤라야 시가 더 공교(工巧)해진다는 말이다. 가난도 곤궁함의 원인이 된다. 신체의 결핍이든 가난이든 곤궁해야 시가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부유하고 편안하면 시를 쓰고 싶지도 않을 것이고, 성취를 하고자 하는 욕망도 크지 않을 것이다. 욕망의 성취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과도한 충족이다. 티무르나 바이런의 경우가 그렇다. 비어 있으면 채울 일만 남고, 가득 차면 비울 일만 남는다. 가득 차서 넘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누구나 채우려는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비움의 성찰을 강조하게 된다. 중용(中庸)이 아름답고 좋다. 주역에서는 중(中)을 중시한다. 여섯 개의 효 중에 이효와 오효가 중(中)의 자리다. 중심이고 다른 효에 비해 힘이 세다. 또 홀수 자리에 양효가 오고, 짝수 자리에 음효가 오는 것이 바름[正]이다. 또다른 적중이나 적절함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맡은 업무가 적절하게 맞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바른 자리가 중요하다.
신체적 장애로 인한 끊임없는 열등감이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일반적인 사람보다 몇 배의 노력을 해서 보다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훌륭하다. 하지만 비록 성취는 하겠지만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장애나 결핍을 스스로 잊는 것이다. 『장자』의 덕충부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이와 상통한다. 여기에 나오는 왕태ㆍ신도가ㆍ숙산무지는 모두 형벌로 발 하나가 잘린 사람이다. 또한 인기지리무신이나 옹앙대영도 절름발이 등 신체적 장애가 있는 인물이다. 애태타는 천하의 추남이다. 모두 외모에 연연해하지 않으면서 공자에 맞먹는 성인으로 나온다. 신체적 결핍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전혀 신경쓰지 않는 태도다. 크게 보면 인간의 한계와 불완전함을 수용하며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자세라 할 수 있다.
“텅 빈 공간이 있어서 그릇의 기능이 있게 된다” “계속 채우려 드는 것보다는 멈추는 것이 낫고, 잘 다듬어 예리하게 하면 오래갈 수 없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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