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아프가니스탄의 난민으로 미국에 이주하여 의사로 살고 있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소설인 『연을 쫓는 아이』가 아프간을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하여 살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면, 두 번째 소설은 아프간에 남아있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겪는 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4부로 되어 있는데, 1부는 ‘마리암’이, 2부는 ‘라일라’가 주인공이고, 3부와 4부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시점으로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마리암’은 부잣집 가정부로 일하던 ‘나나’가 낳은 사생아(私生兒)이다.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은 아내가 셋, 자녀가 열 명이나 되는 귀족이고 엄청난 부자이다. 잘릴은 나나와 마리암의 생계를 돌봐 주지만, 아내와 자식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마리암은 다른 형제자매들과 같이 살고 싶어 나나의 말을 어기고, 혼자서 아버지 집에 찾아갔다가 돌아와, 목매어 죽은 어머니를 보게 된다. 잘릴의 가족들은 마리암을, 나이 많은 홀아비 ‘라시드’와 결혼시켜 카불로 보낸다. 라시드는 아들을 원했고, 마리암은 일곱 번이나 유산을 반복한다. 라시드는 온갖 핑계를 대며 매일처럼 마리암을 폭행한다.
‘라일라’는 지성적이고 개방적인 부모를 둔 여성이다. 그녀는 ‘타리크’라는 동네 오빠를 좋아한다. ‘타리크’는 로켓탄에 맞아 한쪽 다리를 잃게 되고,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탈출하여 라일라와 헤어지게 된다. 라일라의 오빠 ‘아마드’와 ‘누르’는 성전(지하드)에 참전하였다가 둘 다 전사한다. 라일라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잃은 상처를 극복해갈 무렵의 어느 날 폭탄이 날아와 라일라의 부모가 모두 죽고, 라일라는 중상을 입고 입원한다. 마리암과 라시드가 라일라를 구해서 돌봐준다. 라시드의 요구로 라일라는 그의 둘째 아내가 된다. 라시드는 처음에 라일라에게 잘해주지만, 라일라가 딸을 낳고 그 딸이 자신의 딸이 아님을 알게 되자, 마리암에게 하듯이 폭행을 일삼는다. 또한 사람을 시켜 라일라의 옛 애인 타리크가 폭탄을 맞아 죽었다는 거짓 이야기를 전하여 단념하게 만든다. 처지가 비슷해진 마리암과 라일라는 과거의 삶을 서로 이야기하고 연대감을 갖는다. 라일라는 돈을 조금씩 모아 딸과 아들, 마리암과 함께 라시드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에 실패하여 집으로 잡혀온 라일라와 마리암은 죽도록 맞고 사흘 동안 감금을 당한 뒤 풀려난다. 라일라는 죽은 줄 알았던 ‘타리크’를 다시 만난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라시드는 라일라를 폭행하고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한다. 마리암은 삽으로 찍어 라시드를 죽인다. 마리암은 살인죄로 사형을 당하고, 라일라는 타리크와 결혼하여 파키스탄에 살다가 9.11 사태로 미국이 개입하자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온다. 잘릴이 마리암에게 남긴 편지 구절이 가슴을 저민다.
“너를 내 딸로 삼지 않고, 그곳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살게 했던 걸 후회한다. ..... 이 저주받은 전쟁에서 내가 보았던 끔찍한 것들과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생각하면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었는지 모르겠구나.”
이 소설에는 두 가지의 지배와 복종이 있다. 하나는 군벌, 소련군, 탈레반 등의 지배와 그에 대한 일반 대중의 복종이다. 다른 하나는 ‘라시드’로 대표되는 남성의 지배와 ‘마리암’과 ‘라일라’로 대표되는 여성의 복종이다. 두 가지 모두 지배의 주된 수단은 폭력을 이용한 생명 위협이다. 일반적으로 폭력 외에 종교나 관습, 법, 성적 관계, 부당한 세금 부과, 불공정한 수사 및 판결 등도 지배의 수단이 된다. 아프간에서 권력을 잡은 군인들은 자신들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납치, 강간, 살인을 저지른다. ‘라시드’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우며 ‘마리암’과 ‘라일라’를 폭행하고 복종하게 한다. 아프간에서 이슬람 종교와 그에 따른 법과 관습은 여성을 지배하고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면이 있다. 라시드가 마리암이나 라일라와 갖는 성관계는 애정의 표현이 아니라, 거의 강압적인 폭행으로 지배 수단의 일종이다.
사람들은 대체로 지배를 좋아하고 복종을 혐오한다. 물론, 절대적인 신에게 또는 죽도록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하거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 그 과정으로 철저히 복종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왜 지배를 좋아하고 복종을 혐오하는가? 지배를 하면 이익이나 명예욕, 자존감 등이 충족되지만, 복종을 하게 되면 불이익, 억압, 수치심, 모욕 등이 수반되기 때문일 것이다.
기꺼이 복종하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마리암과 라일라가 처음에는 라시드에게 복종하다가 나중에는 둘이 연대하여 복종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어쩌다 한 번씩 같이 때리기도 하고, 도망을 가기도 한다. 라시드가 이들을 복종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폭력의 강도가 더 세짐에 따라, 마리암과 라일라가 갖는 복종에 대한 혐오도 커진다. 급기야 라시드의 폭력이 라일라를 죽일 정도가 되자, 마리암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라시드를 쳐죽이는 불복종을 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억압은 종교, 전쟁, 신분 등과 관련되어 증폭된다. 일반적으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남성이 지배를 하고 여성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남성이 여성에 비해 육체적으로 힘이 더 센 것도 원인 중 하나이다. 라시드가 아내들에게 가하는 폭행은 물리적인 힘이 더 세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여성의 출산과 육아도 원인이 된다. 여성이 출산을 하기 때문에 육아도 대부분 여성이 맡게 된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남성들이 대부분 정치를 하고 그들이 만드는 종교와 관습, 제도와 법들이 남성에게 유리한 면이 많다. 뉴질랜드는 여성 정치인들이 더 많아 여성들에게 유리한 제도와 법규가 많은 것이 그 반증이다.
부당한 지배, 즉 하고 싶지 않은 복종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배에 대한 반발이다. 마리암이나 라일라도 반발하기도 했지만,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종교적의 관습이나 전쟁 상황이라는 현실의 벽이 너무 높았고, 생명이 위협당했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목숨을 걸고서야 지배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이 소설에서 라일라의 남자 ‘타리크’는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라일라는 타리크의 억압 없이 행복한 가정을 이룬다. 마리암의 아버지 잘릴은 지배욕도 강하지 않고, 상대를 억압하지도 않지만 신분, 관습, 평판, 체면 등을 의식한다. 그로 인해 마리암은 부당한 복종을 강요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 여러 사람이 연대하여 부당한 지배 구조를 바꾸어 내야 하는 면도 있지만, 개인적인 반발이나 불복종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임제 선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대들이 어느 곳에서나 주인이 된다면, 자신이 있는 그곳이 모두 참이 될 것이다.”[隨處作主(수처작주), 立處皆眞(입처개진)]
『천 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를 읽고
'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 >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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