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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여백(餘白)

by 두마리 4 2025. 2. 8.

처음 만났던 그순간부터/우린 서로 마음이 끌려/하얀 가슴에 오색 무지개/ 곱게곱게 그렸었지/ 우리는 진정 사랑했기에/그려야할 그림도 많아/여백도 없이 빼곡빼곡/ 가슴 가득 채워놓았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이에/ 바람처럼 스며든 공간/ 가슴앓이 속의 이 순간이/ 사랑의 여백인가요/ 바람부는데 구름 가는데/ 내 마음도 흘러가는데/ 언제쯤일까 어디쯤일까/ 우리사랑 여백의 끝은/언제부터인가 우리 사이에/ 바람처럼 스며든 공간/ 가슴앓이 속의 이 순간이/ 사랑의 여백인가요/ 바람부는데 구름가는데/ 내마음도 흘러가는데/ 언제쯤일까 어디쯤일까/ 우리사랑 여백의 끝은/언제쯤일까 어디쯤일까/ 우리 사랑 여백의 끝은//-‘여백’(주현미)

 

얼굴이 잘생긴 사람은/늙어 가는 게 슬프겠지/아무리 화려한 옷을 입어도/저녁이면 벗게 되니까/내 손에 주름이 있는 건/길고 긴 내 인생에 훈장이고/마음에 주름이 있는 건/버리지 못한 욕심에 흔적/ 청춘은 붉은 색도 아니고/ 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마음에 따라서 변하는/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그 게 인생인거야/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청춘은 붉은 색도 아니고/사랑은 핑크빛도 아니더라/마음에 따라서 변하는/ 욕심 속 물감의 장난이지/ 그게 인생인거야/ 전화기 충전은 잘 하면서/ 내 삶은 충전하지 못하고 사네/ 마음에 여백이 없어서/ 인생을 쫓기듯 그렸네/ 마지막 남은 나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우리라 -‘삶의 여백’(정동원)

 

인기 있는 시는 많이 읽힌다. 노래로도 만들어져 많이 불리기도 한다. ‘세월이 가면’(박인환), ‘부모·개여울·세상 모르고 살았노라·실버들·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김소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김광섭), ‘푸르른 날’(서정주), ‘우리가 어느 별에서’(정호승), ‘향수’(정지용)

 

개인적으로 정지용의 향수가 가사도 노래도 최고라고 생각한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인용된 향수는 작품 내용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시를 따로 읽는 것보다 소설 태백산백의 작품 속 상황과 맥락에서 느끼는 향수는 너무나 절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보다 인기있는 노랫말을 사람들은 더 많이 듣고 부른다. 옛날에는 시와 노래가 분리되지 않아 시가(詩歌)라고 했다. 몇 번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고 감흥도 일어나지 않는 시를 읽다보면, 시의 효용성에 의문이 생긴다. 시의 가독성이 좋은 유행가 가사 정도면 좋지 않을까. 실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는 그 수준이다.

 

가사가 좋은 유행가를 생각하다 주현미의 여백이 떠올랐다. 여백(餘白)은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이다. 글씨나 그림이 없는 백지(白紙)를 여백이라 할 수 없다. 서양화에서는 대체로 여백없이 채색한다. 동양화에는 여백을 중시한다. 여백은 글씨나 그림보다 그 공간이 작아야 할 터인데, 절반을 넘는 경우도 있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 그 사이에 여백이 생기는 바라지 않는다. 그 여백은 자신에 대한 무관심이나 소홀이라고 생각한다. 또는 그 여백은 둘 사이에 다른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틈이라고 생각한다. 찰떡처럼 아주 찰싹 달라붙어 혹시라도 삼각관계의 긴장이 생길까 방어한다.

여백도 없이 빼곡빼곡 가슴 가득 채워놓으려는 욕심이 오히려 사랑하는 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게 아닐까. 물건도 완벽하게 소유를 못하는데, 자신과 똑같이 자유로운 선택 의지가 있는 사람을 물샐틈 없이 서로 구속하려는 마음이야말로 숨막히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루 종일 사랑하는 한 사람밖에 생각하지 않는 사랑, 온통 그 한 사람을 위해서 무엇을 할까 생각하는 사랑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거나, 꿈꾼다. 하지만, 지속하기 위한 사랑은 욕심을 절제하고 스스로 충전하는 시간도 가지는 여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공백 포함 1,880)

별별챌린지 839일차

 

주현미 - 여백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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