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있다.
사실은 소유와 존재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유는 인간의 존재 양식 중 하나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소비도 소유의 한 형태이다. 따라서 소유=존재라고 할 수 있다. 존재감은 소유에 비례한다. 물론 이 책에서 ‘존재’와 ‘소유’는 서로 대조적이고 대칭적인 개념으로 쓰고 있다.
『소유냐 존재냐』는 1976년에 출간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사회의 인류가 절실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를 그때 이미 말해놓았다. 서론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기 생활의 독립된 주인이 된다는 꿈은 우리 모두가 관료제란 기계의 톱니바퀴가 되어 사고도 감정도 기호도 정치와 산업 및 그것들이 지배하는 매스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조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가 눈뜨기 시작했을 때 끝나버렸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1952년에 이런 말을 했다고 인용하고 있다.
“과감히 현상에 직면하라....인간은 초인이 되었다.....그러나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이 초인은 초인간적인 이성의 수준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그의 힘이 커짐에 따라 점점 그는 가련한 인간이 된다....초인이 되면 될수록 자기 자신이 비인간적으로 된다는 사실에 우리는 각성해야만 한다.”
현대사회의 문제를 너무나도 적확하게 지적하는 말이 아닌가. 1950년에 이미 인류 문명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기후 위기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데, 기우(杞憂)에 불과할까. 과학문명의 발전은 여전히 낙관적인가.
지구 생태계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 인간만이 소유한다. 다람쥐나 개미 등도 식량을 축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속적이지도 않고 배타적이지도 않다. 인간의 소유 대상은 끝이 없다. 땅, 산, 강물, 바다, 하늘을 넘어 우주 행성까지 소유하려 한다. 소유할 수 없는 것도 소유한다. 생각도 가지고 욕망도 가지고 사랑도 가지고 불면증도 가지고 문제도 가진다고 말한다.
로크의 소유론을 보면, 소유의 가장 근본 바탕은 자신의 몸뚱이다.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나의 몸은 나의 소유다. 나의 소유인 몸으로 누구의 소유도 아닌 물건을 가지면 그것은 나의 소유가 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도토리를 내가 주우면 그 도토리는 내 소유가 된다. 누구의 것도 아닌 땅을 내 몸으로 개간하여 말뚝을 박아 울타리를 치면 그 땅이 내 소유가 된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옷이나 신발, 자동차보다 모든 소유의 바탕인 내 몸뚱아리가 나의 소유인지 헷갈린다. 나의 신발이나 자동차는 내가 버리거나 팔지 않는 이상 내것인 것에 문제가 없을 듯하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몸은 그렇지 않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팔과 다리, 허리가 내가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진정 내 소유가 맞는가. 살갗 안에 있는 것들은 더 심하다. 배 속의 창자, 머릿속, 핏줄, 온갖 세포와 신경들은 과연 나의 소유가 맞는가. 이것들은 왜 내가 가지고 있는 한 자루 볼펜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가. 내 몸이 나의 것이 아니라면 소유의 근본이 흔들린다.
(공백 포함 1,493자)
별별챌린지 8기 1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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