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오의 산문집 『측백나무집 등불을 켜고』를 읽었다.
1부 ‘지구의 작은 섬’은 저자가 지리산 뱀사골에 정착해 사는 이야기다. 땅을 구하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그 속에서 이웃과 어울리고 자연과 교감하며 살아가면서 실천하고 깨닫는 이야기들을 쓰고 있다.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작가의 삶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부드럽고 풍부한 감성이 적절한 비유와 묘사를 통해 글 전편에 아름다운 무늬처럼 깔려 있다. 문장이 맑고 깨끗하고 성실하다. 작가의 삶과 일치한다. 귀촌해서 자연 속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은 것은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는 로망이다. 그런데 막상 실현해보면 그 로망은 현실의 벽에 부딪혀 비현실적인 고통과 고독으로 무너져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작가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냥 로망으로서의 귀촌이 아니라 살고 싶은 삶을 누리기 위한 귀촌이다. 삶의 배경으로서 자연이 아니라 자연과 삶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
2부 ‘나를 키운 그물’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집안 살림에는 무책임한 남편을 만나서, 백년 생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온 어머니 이야기는 눈물겹고 감동적이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생각났다. 외할아버지 이야기를 볼 때는 나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작가의 가족 이야기를 보면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는 유복한 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아버지는 조금 일찍 돌아가셨지만, 쉬는 일이 없이 부지런하셨고 솜씨도 좋으셨다. 어머니 또한 누구 못지 않게 부지런하셨고 일이든 삼베든 음식이든 동네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배웅’이란 글이 인상적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스스로 반성을 했다. 나는 어느 때부터 마중이나 배웅을 잊고 살고 있었다. 가족이든 손님이든 누가 나한테나 나의 집에 오면 반가운 얼굴로 문밖까지 뛰어나가 맞이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얼마나 기쁘고, 그런 내 마음은 얼마나 설렐까. 또 나의 집을 떠날 때 집밖이나 동네 어귀까지 따라나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 수 있는 내 마음은 어디에 가 있었을까.
3부 ‘친구가 되어 가는 중’은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 때 만나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는 친구, 그 친구들의 결혼과 이혼, 친구 아들의 커밍아웃, 신부가 되는 친구의 아들 이야기, 친구의 아픔, 독서모임 친구, 그림책 읽기 친구, 여행에서 만난 친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나도 살아가면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있다. 나는 그 친구들의 삶에 어떤 의미일까. 그 친구들은 나의 삶의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4부 ‘아이들이 손끝이 향하는 곳’은 저자가 교사로 아이들과 생활한 이야기기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사람들은 인정받고 싶어한다. 교사는 특히 더 그렇다. 교사가 수업을 잘한다고 해서 그에 비례해서 성과를 인정받고 승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교사의 진정한 즐거움은 학생들과 교감, 그들의 인정과 선망과 관심과 호기심에 있다. 저자의 제자에 대한 사랑이 느껴진다. 성실해도 채워질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성실하게 노력하면서 해법을 찾아가는 저자의 힘든 노력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 책은 등불을 켜고 읽어야 한다. 아니, 하나의 등불이 되는 책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상황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고 있다. 저자는 그 중 한 사람이지만 좀 특별하다. 솔직하고 성실하다. 글이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맑다. 글 속에 담긴 삶도 맑고 간결하다. 그러면서 또 여유롭고 풍부하다.
-『측백나무집 등불을 켜고』(김정오)를 읽고
(공백 포함 1,715자)
별별챌린지 8기 10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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