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현재의 상황을 너무나 잘 설명해주는 듯한 내용을 만나면 반갑다. 신기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쉽게 바뀌지 않음을 새삼 깨닫는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사람들이 제복과 칭호가 능력을 구성하는 참된 자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저절로 발생된 것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권위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거기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종속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즉 비판적인 사고를 둔화시켜 그들이 허구를 믿게끔 만들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선전기관의 책모를 알고 있고, 비판적인 판단력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상투적인 문구에 마음이 누그러져 복종해 버리는 꼴을 알고 있고, 의타심을 갖고 자신의 눈과 판단력을 믿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마는 꼴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허구 때문에 현실을 보지 못한다.”
능력이 있으면 권위가 생긴다. 인생의 교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권위는 능력에 따른 것이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스승은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외형적인 장치가 필요 없다. 권위를 세우기 위한 협박이나 매수도 필요 없다.
제복은 권위의 상징이다. 사관생도나 군인의 제복은 권위를 만들어준다. 사회적 지위에 따른 칭호도 권위의 상징이다. 지위에 걸맞는 명패, 사무실 공간, 전용 자동차 등도 권위의 상징이다. 문제는 권위에 걸맞는 능력이다. 능력이 안 되면서도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있다. 능력이 없을수록 권위의 상징에 집착한다. 소위 어깨 뽕이 심하게 들어가고 외형적이고 물리적인 권위를 과도하게 내세운다. 심지어 사회적 지위를 맡으면 능력도 생기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르면서 아는 체를 한다. 부족한 점을 메꿔줄 좋은 비서나 보좌관이 없으면 그 사람이 관장하는 조직이 전체적으로 부패하게 된다.
‘권위의 상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거기서 이익을 얻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종속하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즉 비판적인 사고를 둔화시켜 그들의 허구를 믿게 만든다.’ 작금의 현실에 너무나 딱 맞는 얘기가 아닌가. 실재하지 않는 허구를 퍼뜨리는데도 그 허구를 검증하지 않는다. 또다른 허구로 앞서 만든 허구의 배경을 만들어주면, 앞의 허구는 강력한 현실로 둔갑한다. 대중의 비판적인 판단력을 파괴하는 여론 조사 기관과 언론의 책략을 보여주었는데도, 자신의 눈과 판단력보다 자신이 추종하는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공백 포함 1,249자)
별별챌린지 8기 1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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