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 시험에 나온 유한준의 「잊음을 논함」이 좀 흥미롭다. ‘유한준’을 검색해보니, 조선 후기(1732~1811)의 문장가ㆍ서화가이며 남유용의 제자로 송시열을 추모하여 『송자대전』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당대에 뛰어난 문장가로 손꼽혔으며 저서로 『저암집』이 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이 ‘망해(忘解)’라고 한다. 수험생들이 이 지문 때문에 ‘망했’다는 아재개그를 한다. 논리적이기는 한데 잊음이 병이 되는 것과 잊지 않음이 병이 되는 것에 대해 물음, 부정과 이중부정을 섞어서 전개하여 얼른 정리가 안 되는 문단이 두어 개 있다. 지문의 일부를 잠깐 보자. 내용이 다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긴 하다.
“천하의 걱정거리는 어디에서 나오겠느냐? 잊어도 좋을 것은 잊지 못하고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잊는 데서 나온다. 눈은 아름다움을 잊지 못하고, 귀는 좋은 소리를 잊지 못하며, 입은 맛난 음식을 잊지 못하고, 사는 곳은 화려한 집을 잊지 못한다. ....잊어서는 안 될 것을 잊는 자기 되면, 어버이에게는 효심을 잊어버리고, 임금에게는 충성심을 잊어버리며...”
김광석의 노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사를 보자.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 텅빈 방문을 닫은 채로/ 아직도 남아 있는 너의 향기...잊으려 돌아 누운 내 눈가에/ 말없이 흐르는 이슬방울들...” 김소월의 시 ‘못 잊어’.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 그런대로 한세상 지내시구려/ 사노라면 잊힐 날 있으리다.” 양수경의 ‘잊을래’. “말없이 떠나버린 너 생각하면 무엇하나/ 내마음 깊은 곳에 남아있는 그 사람 잊어야 하지....”
잊는 게 쉬울까, 잊지 않는 게 쉬울까. 잊는 건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 저절로 망각된다.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해서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신체의 동물적 기능에 따라 자율적으로 작동한다. 호흡하고 맥박이 뛰고 피가 돌고 음식을 먹고 배설을 하는 등의 생존 기능은 잊지 않아서 되는 게 아니라 저절로 작동된다.
잊지 않는 것은 의지이고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무수한 반복이 쌓이면 기억하지 않아도 거의 자동으로 기억된 것이 재생된다. 매일 들락거리는 자기의 집, 매일 보는 가족이 그렇다. 특별히 기억하지 않았는데도 집을 찾아가고, 가족임을 잊지 않는다. 옛날에도 지금도 사회 생활에 필요한 윤리와 필수 규칙들은 끊임없이 반복하고 주입한다.
10년에 한 번 정도 집에 돌아가거나 가족을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은 잊지 않으려는 의시적인 노력 없이 이루어진다. 이 일상적 생활이 생존에 가장 중요하다. 이 일상의 범위에 자주 들어오는 사람이 나의 생존에 필요한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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