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칠환의 시, ‘가을’을 읽는다.
조는 온 힘을 다해 좁쌀로 들어간다
벼는 온 힘을 다해 볍씨로 들어간다
참깨는 온 힘을 다해 깨알로 들어간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디로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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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쌀을 뿌리면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영근다
볍씨를 뿌려 모를 옮겨 심으면 꽃이 피고 또 나락이 열린다
참깨 씨앗을 뿌리면 참깨가 열린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거꾸로 돌리면
조는 좁쌀로 들어가고
벼는 볍씨로 들어가고
참깨는 깨알로 들어가는 듯이 보인다
깨알같이 작은 깨알을 심었는데
그 깨알같이 작은 데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참깨 꼬투리가 생기는 걸 보면 너무 신비롭다
그 작은 깨알 안에 줄기와 이파리와 꽃과 꼬투리가 응축되어 있음이 아닌가
인간은 정자와 난자 안에
뼈와 살, 손가락, 발가락, 손톱과 발톱, 머리카락이 응축되어 있으리라
움직이고 말하는 것도
기뻐하고 슬퍼하고 분노하고 미워하는 감정도
따지고 생각하는 것도
응축되어 있다가
적절한 환경을 만나
피어나기도 안 피어나기도 하리라
인간이 죽을 때
온 힘을 다해서 씨앗으로 응축되면 좋으련만
한 번 피어난 씨앗은
아무리 온 힘을 다해도 응축되지 않는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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