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 3장의 내용이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해야 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게 해야 하며,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우게 하며,
그 뜻을 약하게 하고 그 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언제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無知)무욕(無欲)하게 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위(無爲)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면 혼란이 있을 리 없다.
『장자 』응제왕 편의 내용이다.
남해 임금은 숙, 북해 임금은 홀, 중앙의 임금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이 자주 혼돈의 땅에서 만났는데 혼돈을 그들을 잘 대접했다.
숙과 홀은 혼돈의 은덕을 갚을 방도를 의논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오직 혼돈에게만 구멍이 없으니, 시험 삼아 구멍을 뚫어 줍시다.”
날마다 구멍 한 개씩 뚤어주었는데 칠 일 만에 혼돈은 죽어버렸다.
현명함을 숭상해야 하는 시대에 살면서 ‘현명함을 숭상하게 하지 말라’는 노자의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구나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부모가 현명하기를 바라고, 자식이 현명하기를 바란다. 시험 성적이 현명함의 순서가 아닐 수 있어도, 일반 사람들은 현명함의 서열이라 생각한다. 학교에서 사회에서 끊임없이 현명함의 등급과 서열을 나누고 경쟁을 시킨다. 옛날이나 지금이 현명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없으리라. 잘못을 저질러봐야 범위가 작다. 현명할수록 그 범위는 커진다.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해야 되는 사람은 위정자다. 이 위정자는 현명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 지배자만 현명하면 피지배자인 백성들이 많이 현명하면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히기도 한다. 다스리는 입장에서 보면, 그럴 것 같지만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보면 좀 고약하다. 아는 게 병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백성들이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도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살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지배자의 논리같아 고약하다. 대부분의 재화(財貨)가 희소성 원칙에 따라 구하기 어려울수록 비싼 가격에 거래되지 않는가. 생존의 수단으로 보면 금이나 다이아몬드를 부숴먹고 살 수는 없지만, 그게 돈이 되지 않는가. 구하기 어려운 물건은 돈이나 권력이 있는 자들만 욕심내야 되는 게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하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다 가랑이 찢어지니, 없는 사람은 실질을 숭상함이 타당한 듯하다.
없는 백성들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시대다. 그래서 가난한 백성도 빚을 내서 파산을 하더라도 좋은 차도 타고, 집도 사고 싶도록 유혹한다. ‘마음’을 먹고 ‘뜻’을 가지고 어떤 일을 계획하는 일보다는 ‘배’를 채우고, ‘뼈’를 튼튼히 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피지배층의 본분에 맞는 일인지 모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똑한 사람들이 문제다.
‘혼돈’은 ‘분별’과 대립된다. 혼돈은 통나무처럼 인위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이고 모든 것이 어우러진 하나이다.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한 인식을 바탕으로 분별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온갖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어쩌면 인간이 추구하는 문명의 발전은 자연의 죽음과 반비례하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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