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신영복) 독서토론 모임을 했다. 10명의 회원이 함께 했다. 마음에 드는 사상가와 그 이유를 말하는데, 묵가를 드는 회원이 많았다. 극도로 차별적인 현대 사회의 반증이리라.
묵수(墨守)라는 말이 국어 사전에 나온다. 제 의견이나 생각, 또는 옛날 습관 따위를 굳게 지킴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중국 춘추 시대 송나라의 묵자(墨子)가 성을 잘 지켜 초나라의 공격을 아홉 번이나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다. 묵자가 얼마나 수성(守城)을 잘했으면 현재의 국어사전에도 묵수라는 말이 실려 있을까.
묵자(墨子)의 ‘묵(墨)’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하다. 하층민, 묵형(墨刑), 반체제, 먹줄, 엄격한 규율, 근검 절용, 실천궁행(實踐躬行), 거칠고 남루한 의복, 반전(反戰), 평화, 평등, 보편적 박애주의, 교리(交利), 상생(相生), 연대,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일사불란한 진행,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
묵자의 겸애(兼愛)와 하느님 사상[천지론天志論]은 기독교 사상과 꼭 닮았다. 근거는 없지만 예수가 태어날 때 찾아온 동방박사가 묵가(墨家)라는 설도 있다.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자기 나라 보듯이 하고, 다른 사람 보기를 자기 보듯이 하라”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묵자에 나오는 말들이다. 성경의 내용과 너무나 흡사하지 않은가.
노역과 노동주의, 만민 평등의 공리주의. 마르크스 사상과도 상통하지 않는가. 맹자는 “묵가는 보편적 사랑[겸애(兼愛)]를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평했다.
마르크스주의자도 묵자를 숭상하지 않는다. 기독교주의자도 묵자를 칭송하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마르크주의자가 아니다. 예수도 기독교주의자가 아니다. 묵자가 현실에서 지속가능하지 않듯이 마르크스 사상이나 예수 사상도 현실에서 그대로 실현하여 지속될 수 없는 모양이다.
장자는 묵자에 대해서 이렇게 평했다. “살아서는 죽도록 일만 하고 죽어서도 후한 장례 대신 박장(薄葬)에 만족해야 했으니, 그 길은 너무나 각박했다. …… 묵자는 만인에 대한 사랑과 만인들 간의 이익을 말하고 서로의 투쟁을 반대했으니 그는 실로 분노하지 말 것을 설파한 것이다. 노래하고 싶을 때 노래하지 말고, 울고 싶을 때 울지 말고, 즐거울 때 즐거워하지 말아야 한다면 이런 묵가의 절제는 과연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인가, 묵가의 원칙은 너무나 각박하다”
묵자의 무차별적 사랑. 얼마나 황홀하게 매력적인가. 또 얼마나 실현 불가능한가. 비현실적이어서 매력이 있고, 또 그만큼 사람들이 갈구하는지 모른다. 너무 매력적인 것은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듯이” 현실 상황에 맞게 처세해야 하는가.
한비자에 나오는 『묵자』 문장의 간결함에 대한 풍자적 예화가 재미있다.
“진(秦) 나라 임금이 딸을 진(晉) 나라 공자에게 출가시켰다. 그 딸을 시집보낼 때 70명의 첩을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딸려 보냈다. 공자는 그 첩들을 사랑하고 그 딸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논변이 많으면 그 핵심을 놓친다는 것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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