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신영복) ‘10장 법가와 천하 통일’ 내용 중 ‘한비자’에 대해 인용된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악양식자(樂羊食子).
악양이라는 위나라 장수가 중산국을 공격했다. 때마침 악양의 아들이 중산국에 있었다. 중산국 왕이 그 아들을 인질로 삼아 공격을 멈출 것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중산국 왕은 드디어 그 아들을 죽여 국을 끓여 악양에게 보냈다. 악양은 태연히 그 국을 먹었다. 위나리 임금이 도사찬(堵師贊)에게 악양을 칭찬하여 말했다. “악양은 나 때문에 자식의 고기를 먹었다.” 도사찬이 대답했다. “자기 자식의 고기를 먹는 사람이 누구인들 먹지 않겠습니까?” 악양이 중산에서 돌아오자 위나라 임금 문후는 그의 공로에 대하여 상은 내렸지만 그의 마음은 의심했다고 한다.
노나라 삼환의 한 사람인 맹손이 사냥을 나가 사슴 새끼 한 마리를 잡았다. 잡은 사슴 새끼를 신하인 진서파를 시켜 싣고 돌아오게 했다. 그런데 어미 사슴이 따라오면서 울었다. 진서파는 참을 수 없어서 새끼를 놓아주었다. 맹손이 돌아와서 사슴 새끼를 찾았다. 진서파가 대답했다. “울면서 따라오는 어미를 차마 볼 수 없어서 놓아주었습니다” 맹손이 크게 노하여 그를 내쫓아버렸다. 석 달 뒤에 맹손은 다시 진서파를 불러 자기 아들의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자 맹손의 마부가 물었다. “전에는 죄를 물어 내치시더니 지금 다시 그를 불러 아드님의 사부로 삼으시니 어쩐 까닭이십니까?” 맹손의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슴 새끼의 아픔도 참지 못하거늘 하물며 내 아들의 아픔을 참을 수 있겠느냐?”
이 이야기에 대해 한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양은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임을 받았다.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한 법이다”
『사기열전』(사마천) ‘노자ㆍ한비자 열전’에 인용된 내용이 떠오른다.
예전에 정나라 무공은 호나라를 칠 계획으로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느 나라를 치면 되겠소?”
관기사가 대답했다.
“호나라를 칠 만합니다”
그러자 무공은 이렇게 말했다.
“호나라는 형제 같은 나라인데 그대는 호나라를 치라고 하니 어찌된 일이오?”
그러고 나서 관기사를 죽였다. 호나라 군주는 이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친한 친구 나라로 여기고 공격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나라 군사들이 호나라를 습격하여 취하였다.
‘손자ㆍ오기 열전’편 오기에 관한 내용도 생각난다.
오기는 노나라 사람으로 병사 다루는 일을 좋아했다. 그는 일찍이 증자에게 배우고 노나라 군주를 섬겼다. 제나라 사람들이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임명하려 했으나, 오기는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노나라 사람들이 그를 의심했다. 오기는 그리하여 이름을 얻기 위해 자기 아내를 죽여 제나라 편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노나라는 마침내 그를 장군으로 임명했다. 오기는 병사들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교묘한 사기가 아니라 적나라한 속임수가 너무나 정정당당 명명백백하게 활개를 치고 있다. 졸렬한 진실들은 구석에서, 음지에서, 변방에서 아우성치며 꿈틀거리고 있다.
바르게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관기사'는 바른 말을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 '무공'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을 수 있다. 아니 무공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생각을 안 해 본 것이 실책이다. 호나라를 칠 계획으로 호나라에 딸을 시집보내지 않았는가. 상황과 때에 맞게 답을 하지 않아서, '무공'이 호나라를 대상으로 속임수를 쓰는데 도구로 희생당한 것이다.
개인적인 인간 관계에서도 사람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다. 국가 간의 관계나 정치적인 권력 관계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옛날에만 그랬을 리 없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오기'에 관한 이야기는 왜곡되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설도 있다. 오기가 워낙 법과 원칙에 철저하고 청렴했기 때문에, 이를 시기하거나,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아서 그럴 가능성도 있긴 하다. '오기'와 '악양'은 냉혈하고 냉철한 면에 있어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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