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젖은 풀잎은 물가를 둘러 있고
조그마한 연못 맑아 모래조차 뵈지 않네.
구름 날고 새 지남은 어쩔 수 없다지만
때때로 제비 와서 물결 찰까 걱정일새.
『한시미학산책』(정민)에 인용된 퇴계 이황의 시다. 이 시는 가슴으로 쓴 시일까, 머리로 쓴 시일까. 보여주는 시일까, 말하는 시일까. 임금이 불러올릴 때마다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낙향했다는 퇴계. 이 시는 퇴계의 내면을 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황은 물기로 함초롬히 젖은 풀잎이 둘어 있는 자그마한 연못, 맑아서 바닥까지 훤히 보이고, 가끔 그림자 지고 멀리 공중에서 새 지나지만, 연못 위에는 파문조차 일지 않는 명경지수(明鏡止水). 이황은 이같은 마음으로 학문이나 연구하고자 했을까.
“제비 와서 물결 찰까” 이 구절에서 최인호의 장편소설 『유림』에 나오는 단양 군수 이황과 명기(名妓) 두향의 인연이 떠오른다.
퇴계와 두향이 이별하는 마지막 날 밤. 두향이 퇴계에게 주었다는 즉흥시.
찬 자리 팔베개에 어느 잠 하마 오리
무심히 거울 드니 얼굴만 야윗고야
백년을 못 사는 인생 이별 더욱 설워라
퇴계가 두향이가 입던 치마폭에 정표로 적어주었다는 두보의 시.
죽어 이별은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살아 이별은 슬프기 그지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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