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의 『강의』 2장 오래된 시와 언(言)을 읽고 있다.
시경에 나오는 시들을 몇 편 인용하고 설명과 감상을 붙이고 있다. 그 중에 한 편을 인용해본다. 제목이 ‘치마를 걷고[건상(褰裳)]’이다.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하다면 치마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남자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치마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내가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사나이 멍청이 같은 사나이.
정나라에서 수집 정나라 민요, 정풍(鄭風)이다. 저자는 ‘음탕하다고 할 정도로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며 ‘이 정도 번역은 상당히 점잖게 새긴 셈’이라고 말한다. 신영복 뿐만 아니라, 시경의 정풍(鄭風)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 대체로 그렇다. 화자가 여자라서 그런가. 남자로 바꿔보자.
당신이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바지 걷고 진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겨집이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아가씨 멍청이 같은 아가씨.
당신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바지 걷고 유수라도 건너가리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찌 겨집이 그대뿐이랴.
바보 같은 아가씨 멍청이 같은 아가씨.
남자가 바지 걷고 물을 건너는 것보다, 여자가 치마 걷고 물을 건너는 것은 더 음탕한 것인가.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비롯된 듯하다. 똑같은 사랑의 감정이나 행위도 여자가 하면 더 음탕한 것인가. ‘이 정도 번역은 상당히 점잖게 새긴 셈’이라는 게 무슨 말일까. 진수와 유수는 어느 정도 깊이의 물일까. 시냇물일까, 강물일까. 치마를 걷는다는 것은 젖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물이 깊어 치마를 조금 걷는 정도가 아니기 때문인가.
사랑의 감정이나 욕망은 솔직하게 드러내면 왜 음탕한 게 될까. 성에 대한 금기와 절제가 지배 양식 중의 하나라는 말이 떠오른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부와 권력에 따라 성에 대한 금기와 억제가 다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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