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유시민)를 읽고 있다.
“모양과 크기가 같은 한 쌍의 염색체를 ‘상동(相同)’ 염색체라고 한다. 상동염색체의 같은 위치에는 눈의 색이나 다리의 길이와 같은 형질을 결정할 때 경쟁하는 ‘대립유전자’가 있다. 대립유전자 가운데 자식에게 바로 발현되는 것을 우성(優性), 잠복하는 것을 열성(劣性)이라고 한다.”
높고 낮음, 밝음과 어둠, 길고 짧음, 있음과 없음, 좋음과 나쁨 등 세상만물도 모두 대립적이지 않은가. 어느 한 쪽이 발현되면 어느 한 쪽은 잠복하고, 어느 한 쪽이 우월하면 어느 한 쪽은 열등한 게 아닐까. 발현과 잠복이 고정돼 있지 않듯이, 세상의 모든 대립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하는 게 아닐까.
“환원은 복잡한 것을 단순한 것으로 나누어 단순한 것의 실체와 운동법칙을 파악하는 작업이다....복잡한 것은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고, 단순한 것은 더 단순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비교적 단순한 현상으로 비교적 복잡한 현상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환원은 강력한 연구 방법이다.”
사람보다는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 원소, 염색체 등으로 나눌수록 더 단순하다. 더 이상 단순해질 수 없는 단위를 찾는다면, 모든 것이 그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면 사람의 복잡한 모든 것을 그 단순한 하나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인문학에서도 단순화를 시도한다. 감성과 이성, 의식과 무의식, 양(陽)과 음(陰), 오행(五行), 팔괘(八卦),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 육체와 영혼, 선(善)과 악(惡), 천사와 악마,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단칠정(四端七情) 등 모든 것들이 복잡한 인간 삶을 단순화시켜 보려는 작업이다.
“ESS는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evolutionary stable strategy)을 줄인 말이다. ESS는 어떤 군집의 대다수 개체가 일단 선택하면 다른 모든 전략을 능가하는 전략이다.”
쉬리는 여울 돌 틈에 알을 낳는다. 어떤 암컷이 마음에 드는 자리를 먼저 차지한다. 다른 암컷들도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 ‘전쟁’이 유리한 생존 전략이다. 대부분이 피터지게 싸우느라 정신 없을 때 어떤 한 암컷이 임자 없는 자리를 차지한다면 ‘평화’가 유리한 생존 전략이다. 대부분 줄 서서 기다린다면 새치기 하는 한 놈이 유리하다. 대부분 새치기 하느라고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한 놈이 가장 유리하다. 모두가 줄 서는 세상도 없고, 모두가 새치기 하는 세상도 없는 듯하다. 인간 세상의 법과 불법은 진화적으로 안정한 전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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