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60인데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어떻게 간 크게 그럴 수 있냐는 표정이다. 내시경 검사가 이렇게 일반화되기 전에는 위 내시경이나 대장 내시경 검사를 했다고 하면 무슨 암이 발병했는가 싶어 깜짝 놀랐다. 내시경 검사라는 의학 기술이 나오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았다.
건강을 위해 검진을 해야 하는 항목 수는 자꾸 늘어간다. 원하지 않아도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검사라고 독촉장이 날아온다. 검사를 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고 협박한다. ‘나’보다 나의 건강을 훨씬 더 염려하고 걱정해주는 것 같다. 날아다니는 새들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내시경 검사를 하지 않는다. 저런 새들은 건강검진의 의료 혜택을 못 받으니 불쌍하다고 해야 할까.
몇 백만원 짜리 검진 프로그램이 상품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별 이상이 없는데도 수백만원 짜리 검사를 받으면서 두려움에 떤다.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받아보고서는 안도하면서 행복해한다.
『건강검진의 거짓말』(마쓰모토 미쓰마사)에 이런 말이 나온다고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김현아)에 인용돼 있다.
“검사 기기가 발달하면서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을 이상 증상으로 취급할지 여부에 대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검진이 실행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검사를 받음으로써 오히려 걱정과 불안이 커지고 말았다.”
인체에서는 매일같이 이상 세포들이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한다고 한다. 이런 논리로 보면, 검사의 정밀도가 높아질수록, 검사를 자주 할수록 의미 없는 이상 소견은 늘어갈 수밖에 없다.
의료 장사는 다른 장사보다 더 고약하다.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을 살 때도 속을 수 있다. 품질이 광고만큼 안 되거나 효용이 가격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아예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내 몸의 일부인데도 내 머릿속이나 뱃속의 상태는 내가 볼 수 없고 확인할 수도 없다. 병원의 검사 결과를, 의사의 진단을 얼마나 믿어야 할까. 의사나 병원이 장사를 하고 있다면 시장에서처럼 흥정을 해야 하나.
올해 103세인 연세대 김형석 명예 교수는 평생 건강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 중에도 아주 드물게 건강검진을 안 받는다는 사람이 있긴 하다.
500만원짜리 검진 프로그램을 받고 아무 이상없다고 행복해 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검진을 안 받은 나는 5백만원 치의 불안감을 상대적으로 얻는 것 같다.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사람들 또는 날아가는 새들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삼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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