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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by 두마리 4 2023. 8. 20.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고 있다. 저자 신영복 선생은 서울대와 그 대학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대 강사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교관을 하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20년 동안 복역하다 출소했다. 감옥이라는 공간은 사색을 강요한다. 사색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더구나 저자는 최상위 그룹에 속하는 지식인이다.

 

사색 도구는 책이다.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일이다. 논어, 맹자, 주역, 중용, 난중일기, 네루의 옥중서간집, 2차대전사, 춘추, 공론, 호민론, 실학, 문화사, 조사월보, 다이제스트, 토지, 들불, 장끼전, 섭동지전, 순오지, 순자, 한비자, 삼국지……. 저자가 읽은 책들이다. 저자는 서예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수인(囚人)들은 늘 벽을 만난다. 통근길의 시민이 ‘stop’을 만나듯벽은 그침이다. 가로막는 산과 같다. 그친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기름’, ‘양육이다. 물론 감옥이 독서와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그침이 필요한 면이 있다. 학교가 그렇고 모든 수련이나 연수가 일상적인 행위를 그쳐야 하는 면이 있다.

 

모순과 역설을 본다. 감옥 밖이든 감옥 안이든, 인간 삶에는 모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궁핍은 필요를 낳고 필요는 또 요구를 낳으며 그 요구가 관철되기 위하여는 크고 작은 투쟁의 관문을 거쳐야 하는 판이다” “행복도 불행만큼 오래 계속된다면 그것 역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활 만드는 사람은 사람이 상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방패를 만든는 사람은 사람이 상할까 두려워한다” “사과장수는 사과나무가 아니면서 사과를 팔고,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정직한 말을 파는 세로(世路)에서, 발파멱월(撥波覓月), 강물을 헤쳐서 달을 찾고, 우산을 먼저 보고 비를 나중 보는 어리석음” “푸른 과실이 햇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 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 듯

 

궁할수록 빼어난 문장이 나온다는 구양수의 말이 떠오른다. 뛰어난 비유와 묘사가 유명한 소설가 못지 않다. “신문지 크기의 각진 봄볕 한 장 등에 지고 이윽고 앉아 있으면 봄은 흡사 정다운 어깨동무처럼 포근히 목을 두른다” “동향(東向)인 우리 방에는 아침에 방석만 한 햇볕 두 개가 들어온다. 가끔 햇볕 속에 눈 감고, 속눈썹에 무수한 무지개를 만들어 본다”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내다가 만 듯 무척 짧은 시간”, “하늘의 비행기가 속력에 의하여 떠 있음에서 알 수 있듯이, 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생활의 제 측면이 일관되게 정돈될 수가 없음은 물론, 자신의 역량마저 금방 풍화되어 무력해지는 법이다마지막 문장에 나오는 생활에 지향과 속력이 없으면 생활의 모든 측면이 일관되게 정돈될 수 없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특히 퇴직을 하고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유지되는 사람들이 새겨들을 만하다.

 

한자어를 많이 쓰고 있다. 감옥에서 읽는 책들이 중국의 고전이라서 더 그런 모양이다. 이를테면 엽탈(葉脫)한 초동(初冬)의 고목(古木)’, ‘하수(遐壽)’ . 한시 구절도 자주 인용된다. 불사춘광 승사춘광(不似春光 勝似春光) 봄빛 아니로되 봄을 웃도는 아름다움이 곧 가을의 정취다. 시경에서 인용한 형제들 묘소에 올라 수유꽃 머리에 꽂을 때/ 문득 한 사람 없는 것을 알리라는 구절은 무사(無邪)를 생각하게 만든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으면서, 감옥 밖에 있는 자는 오히려 스스로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감옥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정래만큼의 황홀한 감옥은 아닐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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