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열전 한비자 편에 세난(說難)이 나온다. 세난(說難)은 유세(遊說)의 어려움이다. ‘유세’는 자기 의견 또는 자기 소속 정당의 주장을 선전하며 돌아다니는 것이다. 요즘은 ‘선거 유세’, ‘방송 차량을 이용한 유세 활동’ 등의 예에서 보듯이 후보자가 유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설득을 한다.
한비자가 유세하던 시대에는 그 대상이 군주였다. 한비자는 유세의 어려움에 대해 말한다.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군주에게 허물이 있을 때 유세자가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교묘한 주장을 내세워 그 잘못을 들추어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군주가 유세자의 충성스러운 마음에 반감을 가지지 않고 주장을 내치지 않아야 비로소 유세자는 그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 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용이라는 벌레는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죽인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출직은 그 지위와 권력을 유권자가 선택하니 투표권이 있는 국민을 상대로 유세한다. 유권자의 마음에 드는 공약을 개발하여 설들하려고 하는 점은 옛날과 유사하다. 그러나 군주의 허물이나 단점을 들추어내는 것과 유권자의 허물이나 단점을 들추어내는 점은 다르다. 군주의 허물이나 단점을 들추어내는 것은 필요하지만 위태로워질 수 있다. 유권자의 허물이나 단점은 알지도 못하고 들추어낼 필요도 없다. 대신에 경쟁 상대가 되는 다른 후보의 허물이나 단점은 아주 적극적으로 들추어낸다. 침소봉대(針小棒大)하기도 하고, 왜곡이나 조작을 하기도 한다.
선택권이 유권자에게 있지만, 유권자가 아닌 자에게 유세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공천이 곧 당선으로 연결되는 경우, 실질적으로 그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유세한다. 하나의 정당에서 한 사람의 대표만 후보로 내세우기 때문에 공천이 바로 당선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공천을 결정하는 자에게 유세한다. 이 유세는 선거 기간과 상관이 없다.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한테 하는 유세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과거 군주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는 자가 있다. ‘군주’ 대신에 그러한 권력을 휘두르는 자를 넣으면 꼭 맞다. 주저 없이 분명하게 바른말을 하고 그 권력자의 잘못을 들처내면 그 몸은 위태로워진다. 그 권력자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권력자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 본 다음에 자신의 의견을 말해야 한다. 물론 선거에 나갈 의향이 없는 관료도 위와 같은 처세를 한다. 그 권력자가 군주와 같다는 반증이다.
'상상이상(想像理想) 이야기 > 책 한 권 읽고 글 한 편 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남 (5) | 2023.08.26 |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 | 2023.08.20 |
지구 끝의 온실, 기후 위기의 미래 (1) | 2023.08.07 |
말하지 않고 말하기 (2) | 2023.08.04 |
발갛게 콩닥거리는 눈길 (0) | 2023.07.3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