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미학산책』(정민)을 읽고 있다. 두 번 째 이야기 제목은 그림과 시, ‘사의전신론(寫意傳神論)’이다. 사의(寫意)는 그림에서,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에 치중하여 그리는 일이다. 전신(傳神)은 그려진 사람의 얼과 마음을 느끼도록 그리는 일이다. ‘사의전신’은 경물을 통해 뜻을 묘사하고 정신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지 않고 그리기’를 말한다. 화제(畫題)를 주면, 화제의 의미를 그림을 통해서 표현해야 한다. 이를테면 ‘어지러운 산이 옛 절을 감추었네(亂山藏古寺)’가 제목으로 출제되었다. 어떤 그림이 최우수작으로 뽑혔을 것 같은가. 숲 속 작은 길에 중이 물동이를 지고 올라가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뽑혔다. 소치 허련에게 고종이 춘화도를 한 장 그려 바치라고 명령했다. 어떤 그림을 그렸을 것 같은가. 외딴 집 섬돌 위에 남녀의 신발이 한 켤레씩 놓인 그림을 그렸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도 있다. 이런 류의 그림은 춘의도(春意圖)다. 동양화 화법 가운데 구름을 그려 달을 드러내는 ‘홍운탁월법(烘雲托月法)’이다.
‘말하지 않고 말하기’를 말한다. 여러 편의 한시를 예로 든다. 《어우야담》의 예가 인상적이다. 한 사나이가 길을 가다 여인을 만났는데 첫눈에 홀딱 반해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다음과 시를 써서 보냈다.
마음은 미인 따라가고 있는데 (心逐紅粧去)
이 몸은 부질없이 문 기대섰소 (身空獨倚門)
그 아가씨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보냈다.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驢嗔車載重)
그대 마음 그 위에 또 얹었으니 (却添一人魂)
사나이도 아가씨도 상대에 대한 마음은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호감을 전했다.
신광수의 ‘골짝 어귀에서 만난 광경(峽口所見)’이란 예도 재미있다.
푸른 치마 아가씨 목화 따러 나왔다가
길손과 마주치자 길가로 돌아섰네
흰둥인 누렁이의 뒤를 따라 달리더니
주인아씨 앞으로 돌아오네
길손과 아가씨 사이에 오갔을 수도 있는 심사(心思)를 흰둥이와 누렁이를 통해서 전하고 있다.
말보다 표정이나 몸짓이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오해의 소지도 적다. 말로서 하더라도 변죽만 울리거나 홍운탁월(烘雲托月), 성동격서(聲東擊西)처럼 비유나 상징, 역설 등으로 전하고자 하는 뜻은 함축시켜 숨겨야 진정성이 실린다.
소년은 시골의 중학생이었다. 그 학교는 한 학년에 3개 학급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소년은 도서위원이었다. 도서관으로 쓰고 있는 교실에는 캐비넷이 몇 개 있었다. 그 캐비넷 안에 있는 책이 도서의 전부였다. 소년이 하는 일은 책을 빌려주고 받는 일이었다. 학생들은 책을 집에 가져가기도 하고, 교실에서 읽다가 곧바로 돌려주기도 했다. 어느날부터 마지막에 한 명의 소녀가 늘 남았다. 교실에 소년과 소녀만 남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일 주일 이 주일이 지났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몇 달이 지났다. 소년과 소녀는 학급이 달랐다. 소녀는 휴식 시간마다 소년이 있는 학급 근처로 와서 보고 갔다. 어떤 때는 친구와 같이 와서 보고 갔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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