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꼬맹이가 대추 서리 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 꼬맹이를 쫓는구나
꼬맹이는 되돌아서 노인에게 소리친다
“내년 대추 익을 때까지 살지도 못할걸요”
이달(李達)이 쓴 박조요(撲棗謠), 대추 따는 노래다. 자연스럽고 평이하다. 심오한 내용도 없고, 뛰어난 수사(修辭)도 없다. 그런데도 시를 읽으면 편안하고 재미있다. 시를 이해하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주제를 생각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이런 시야말로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은 시가 아닌가.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은 시가 아닐까. 영양은 잠을 잘 때 외적의 해를 피하기 위해 뿔을 나뭇가지에 걸고 허공에 매달려 잔다고 한다. 시에서 말은 영양이 땅 위를 걸을 때 생기는 발자국이다. 시의 의미는 뿔을 걸고 허공에 매달린 영양처럼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다.
시를 쓸 때마다 시같지 않는 시라는 말을 쓴다. 스스로 낮추는 말이기도 하지만 시는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벗어나고 싶은 소박한 욕망도 있다. 시를 쓸 때마다 역설(逆說)을 생각한다. 젊을 때는 삶의 모순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모순이야말로 삶의 본질인 듯한 생각이 든다.
낮이 있어야 밤이 있다. 짧은 게 있어야 긴 게 있다. 양지가 있어야 음지가 있다. 차가운 게 있어야 뜨거운 게 있다. 낮은 곳이 있어야 높은 곳이 있다. 나쁜 놈이 있어야 좋은 놈이 있다. 어떤 놈은 일을 만들고, 어떤 놈은 일을 해결한다. 무언가 죽어야 무언가 산다. 말을 쓰지 않고 시를 쓸 수 없지만, 시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은 그 언어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 시를 쓸 때마다 상식을 벗어나는 발상을 생각한다. 말도 안 되는 비논리적인 표현을 생각해본다. 서툴고 몰상식하고 비논리적인 말을 하다 보면 운 좋으면 그 속에서 세상을 초월하는 의미를 얻기도 한다.
이치의 길에 빠지지 않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들지 않는 시를 연습삼아 한 번 써 본다. 하지만 이치의 길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언어의 그물에 걸려 버둥거리는 모습을 보고 만다.
논과 논 사이 먼지 자욱하게 일으키며 달리는 버스
오뉴월 한낮, 모춤 띄엄띄엄 놓인 논엔 모내기 한창
발갛게 콩닥거리는 눈길 내리깔며 눈떼지 못하는 소년
희고 늘씬한 손가락의 소녀는 무슨 일로 조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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