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심리 상담을 받는 기분이었다. 특히 1장이 그랬다. 내 인격 안에 숨어있던 성향들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경계성 인격; ‘상대가 약간만 나에게 친절해도 곧 호감을 느낀다’, ‘가끔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 나도 좀 그런데. 나는 경계성 인격인가. 의존성 인격; ‘타인의 부탁이 난감할지라도 거절을 잘 못한다’, ‘상대방이 측은하고 안타까우면 쉽게 마음이 약해진다’. 어, 나 좀 그런데. 나는 의존성 인격인가. 강박성 인격; ‘무책임한 행동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어, 나도 좀 그런데. 나는 강박성 인격인가. 회피성 인격; ‘내 생각, 특히 기분, 감정을 표현하는 게 어색하고 부끄럽다’, ‘나와 코드가 맞지 않거나, 내게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은 부딪히지 않도록 최대한 피한다’ 어, 나도 좀 그런데. 나는 회피성 인격인가. 편집성 인격; ‘나의 사생활을 남에게 잘 털어놓지 않으며, 과거도 딱히 밝히고 싶지 않다’, ‘누군가 날 비꼬거나 거절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어, 나도 좀 그런데. 나는 편집성 인격인가. 가스라이팅; ‘매사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며 자기 생각을 상대에게 주입한다’ 어, 나도 좀 그런데. 나도 가스라이팅인가. 관계 중독;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먼저 이별을 말해 본 적이 없다’ 어, 나도 그런데. 나는 관계 중독인가.
다행스러운 것은 병적인 것은 아닌 것 같다. 자가점검 항목에서 보통 4개 이상 해당돼야 그런 인격이라고 판정하는데, 나는 두어 개만 해당하는 것 같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의도치 않게 상처를 많이 주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있는 나의 성향을 많이 ‘알아차리게’ 됐다. 처방전을 보고 실천해야 하겠다. 상대를 질책하고 비판하기 전에 상대를 먼저 인정하자. 내가 존중받고 인정받고 싶다면 상대를 먼저 존중하고 인정하자. 모든 불안과 의심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평가하지 말자. 모든 인격 장애에 공통되는 처방이 있다. 독서, 명상, 운동, 글쓰기다. 안 하고 있는 명상도 해보자. 또 잘 안 되는 것은 연습하자. 중요함과 긴급함의 우선 순위에 따라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면서 거절하는 연습을 하자. 구체적인 이유를 제시하며 칭찬하거나 감사의 표현을 하는 연습을 하자.
이 책의 작가는 두 번을 이혼하고 세 번을 결혼했다. 일반적으로 봐서 좋은 경험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정도면 작가 스스로 겪으면서 깨달은 것만 쓰도 책 한 권은 쓰겠다. 책 내용에서 그런 체험에서 배어나오는 생생함과 구체성이 느껴진다. 상담 공부만 해서, 내담자와 상담만 해서 얻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생각해보면 가족 관계가 인간 관계의 기본이다. 가족 관계가 형성되려면 모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 남녀 관계는 묘하다. 결혼 전의 관계와 결혼 후의 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결혼 전에는 서로 눈에 콩깎지가 씌여 이상이나 환상만 보기 십상이다. 결혼 후에는 그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가족과의 다양한 인간 관계로 생기는 문제가 현실이 된다.
1장에서 남녀 간의 사랑, 2장에서 가족 관계, 3장에서 사회적 관계를 다룬 것은 순조롭고 적당하다. 남녀 사랑 관계와 부부 간의 관계에서 문제가 없다면 그 후에 확산되는 가족 관계의 문제도 비교적 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 간의 인간 관계에서 문제가 없다면 대체로 사회적 관계도 무난할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하나의 유형이나 사례를 말할 때마다 웹툰이 들어 있어, 훨씬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글씨체와 디자인의 변화, 넉넉한 여백이 독자에게 심리적 안정과 여유를 갖게 한다. 유형과 사례, 진단, 처방과 변화를 위한 실천 방법들이 단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어 맛깔난 코스요리 밥상 같다. 진단과 처방의 방법이 쉽고 구체적이어서 당장 실천하고 싶어진다.
세상에 상처를 전혀 받지 않는 관계는 쉽지 않다. 반대로 상처를 전혀 주지 않는 관계도 쉽지 않다. 이 책은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거나 주는 원인을 알려 준다. 유형과 사례에 따라 상처를 적게 받거나 상처를 적게 줄 수 있는 처방을 해준다. 처방에 따라서 실천을 한다면 당장 효과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페이지에 인용된 디오게네스의 말이 인상적이다. “사람을 대할 때는 불을 대하듯 하라. 다가갈 때는 타지 않을 정도로, 멀어질 때는 얼지 않을 만큼만.” 약간의 거리를 두라는 소노 아야코의 말이 떠오른다. 적절함과 적당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중용(中庸), 적중(的中), 시중(時中)이 생각난다. 인간 관계는 늘 상대적이다. 내가 크고 많으면 상대는 작고 적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내가 짧고 낮으면 상대는 길고 높게 된다. 그러한 상황은 고정돼 있지 않고 늘 변한다. 그 시간과 공간 사이에서 적절한 거리와 타이밍를 찾아야 하리라.
『상처받지 않는 관계의 비밀』(최리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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