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움278 은둔 물러나거나 숨거나 피해야 할 때인가, 자리를 지키거나 맞서 싸워야 할 때인가. 상황에 따라, 역량에 따라, 이해득실에 따라, 상대에 따라 다르리라. 주역(周易) 천산돈괘(天山遯卦䷠)의 돈(遯)은 ‘피함’, ‘물러남’, ‘숨음’이다. 돈괘에서는 소인(小人)이 득세하여 어지러운 때를 물러나야 할 때로 말하고 있다. 위에는 건괘(乾卦☰)가 있고 아래에는 간괘(艮卦☶)가 있다. 전체로 보면 아래에 음효(陰爻) 두 개가 자라 올라가고 있고, 양효(陽爻) 네 개는 밀려나고 있다. 음효는 소인(小人)을, 양효는 대인(大人)을 상징한다. 이러한 때는 물러나야 형통하고 바르게 해야 조금의 이로움이 있을 뿐이다. B급 이론이 생각난다. 어떤 조직을 구성할 때 B급을 장(長)으로 앉히면 동급이나 그 이하 수준의 사람으로 조.. 2023. 12. 14. 응축 반칠환의 시, ‘가을’을 읽는다. 조는 온 힘을 다해 좁쌀로 들어간다 벼는 온 힘을 다해 볍씨로 들어간다 참깨는 온 힘을 다해 깨알로 들어간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디로 들어가나 -------------------------------- 좁쌀을 뿌리면 싹이 나고 줄기와 잎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영근다 볍씨를 뿌려 모를 옮겨 심으면 꽃이 피고 또 나락이 열린다 참깨 씨앗을 뿌리면 참깨가 열린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거꾸로 돌리면 조는 좁쌀로 들어가고 벼는 볍씨로 들어가고 참깨는 깨알로 들어가는 듯이 보인다 깨알같이 작은 깨알을 심었는데 그 깨알같이 작은 데서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참깨 꼬투리가 생기는 걸 보면 너무 신비롭다 그 작은 깨알 안에 줄기와 이파리와 꽃과 꼬투.. 2023. 12. 13. 생(生)하든 극(剋)하든 현재 시간 11시 25분 마감 12시 마감 시간 안에 골인해보려고 글을 써본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나를 생(生)하는지 극(剋)하는지 화합하자는건지 싸우자는 것인지는 원망하자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칠환의 ‘웃음의 힘’이란 시를 읽는다 “넝쿨장미가 담을 넘고 있다 현행범이다 활짝 웃는다 아무도 잡을 생각 않고 따라 웃는다 왜 꽃의 월담은 죄가 아닌가” 웃음만 힘이 있는가 슬픔도 힘이 있다 분노도 힘이 있다 짜증도 힘이 있다 사랑도 힘이 있다 미움도 힘이 있다 욕망도 힘이 있다 물론 웃음이 힘이 있다는 것이 다른 것은 힘이 없다는 것이 아닐 것이다 웃음이 다른 것에 비해 더 힘이 없는 듯이 보여서 하는 말이리라 그렇다면 웃음이 힘이 있다는 건 슬픔이나 분노나 짜증이나 사랑이나 미움이나 욕망의 힘이 더 세다.. 2023. 12. 12. 변함없는 사랑 남녀가 사랑할 때 서로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기도 한다. 그 사랑의 싹수가 노란 것을 일찌감치 발견하여 헤어지기도 한다. 그때 그 사랑은 변했지만 더 중요한 가치나 이해타산(利害打算)을 따져 결혼하기도 한다. 대개는 그 사랑이 식어서 변할까봐 서둘러 결혼한다. 그리고는 구멍난 사랑을 메우기 위해, 멀어진 두 사람 사이에 놓을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아이를 생산하여 기른다. 아이 핑계 대고 이혼을 미루고 살다보면 미운 정 고운 정이 든다. 그러다가 어느새 매력 없는 중고차가 되어 이혼을 포기하고 주저앉는다. 택산함괘(澤山咸卦䷞)를 말아서 뒤집으면 뇌풍항괘(雷風恒卦䷟)가 된다. 함괘가 젊은 남녀가 교합(交合)하는 것을 상징한다면, 항괘는 좀더 성숙해진 부부의 괘다. 함괘에서는 소녀인 태택괘(兌澤卦☱)가 위.. 2023. 12. 11. 이전 1 ··· 39 40 41 42 43 44 45 ··· 7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