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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파동

봄나물

by 두마리 4 2023. 3. 31.

봄나물

 

텃밭에 갔다. 나물을 좀 뜯었다. 냉이는 흰꽃들이 많이 피었다. 꽃이 피지 않은 것들도 나물로 먹기엔 이제 질기다. 달래도 몇 뿌리 캤다. 얼마 되지 않아 달래장을 만들어야겠다. 쑥도 이제 제법 쑥 올라왔다. 쑥국이나 된장국에 넣기엔 너무 커버렸다. 쑥버무리로 해먹는 게 좋겠다. 쑥떡을 하려면 양이 많아야 되기 때문에 낫으로 슥슥 벨 정도로 좀 무성해야 한다. 미나리도 좀 뜯었다. 야생 미나리라 마트에서 사는 것보다 길이는 짧지만 향이 진하고 맛은 더 있다.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전을 부쳐 먹어도 맛있다.

 

머위가 나물로 먹기에 적당하게 컸다. 머위순이 어릴 때는 뿌리 가까이까지 잘라야 머위 향이 진하다. 너무 오래 데치지 않아야 식감도 쫄깃하고 향도 살아있다. 머위 나물은 초장이나 된장에 무치면 맛있다. 요즘 머위꽃도 올라온다.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머위꽃된장도 나온다. 머위꽃은 튀겨 먹으면 맛이 거의 끝장이다. 머위꽃은 대궁까지 잘라야 먹을 게 많다. 튀기는 즉시 서서 먹어야 더 맛있다. 튀겨서 식탁으로 가져 가는 사이에 맛이 달라진다. 아니 그 잠깐 동안을 참을 수 없을 만큼 맛있다. 부드럽게 씹히면서 입안 가득히 퍼지는 머위향은 거의 천국의 맛이다. 도덕경에 나오는 말을 빌리면 황()하고 홀()하다. 황홀하다. 머위 줄기와 잎도 튀겨 봤는데 머위꽃하고는 풍미가 비할 바가 못된다.

 

부지깽이나물도 좀 뜯었다. 은은한 향이 배어나는 맛이 일품이다. 한번 맛을 본 사람들은 나물 중에 최고라는 사람이 많다. 물론 모든 나물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맛이 있다. 제 각각 다 맛있다고 해야 하리라. 굳이 취나물이나 곰취나 원추리 등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부지깽이나물도 처음 올라오는 게 제일 통통하고 맛도 좋다. 한 번 뜯어먹고 그만두기에는 너무 맛있다. 보통 잘라 먹고 나면 다시 순이 나는 나물들은 세 번 정도 뜯어 먹는다. 부지깽이나물은 세 번 뜯어먹고 그만둘 수 없을 정도로 맛있다. 그래서 5월까지 뜯어먹기도 한다.

 

나물 중에 최고는 참나물이다. 그런데 재배해서 파는 참나물은 미나리보다 못하다. 해발 700, 800이 넘는 심심 산골에서 뜯은 참나물은 생으로 먹어도, 데쳐서 무쳐 먹어도 맛있다. 야생에서 자란 참나물은 뿌리쪽 줄기가 보랏빛이다. 요즘은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를 하는 산나물도 많다. 야생에서 다른 잡초와 경쟁하고 벌레들에 안 먹히려고 만드는 물질이 독특한 맛과 향을 준다.

 

어릴 때 산골이었던 시골에서, 머위는 나물 취급도 못 받았다. 밭에서 나는 온갖 나물들이 많기도 했지만, 봄철 높은 산에서 뜯어온 산나물이 워낙 맛있기 때문이다. 산나물 채취는 주로 여자들 몫이었다. 주로 어머니가 동네 아지매들하고 같이 가서 뜯어왔다. 딱 한번 어머니를 따라 아지매들하고 산나물을 뜯으러 간 적이 있었다. 거의 짐꾼으로 간 셈이었다. 산나물을 가르쳐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밟고 있어도 그게 산나물인 줄 모르는 게 많았다. 나물을 뜯으러 갈 때는 점심 도시락도 최대한 단촐해야 한다. 밥도 비닐봉투에 넣고 된장도 비닐에 조금 넣어 갔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가져가지 않았다.

 

먼 산 깊은 골짜기를 여기저기 헤매며 나물을 뜯다가 점심 때가 되어 밥을 먹었다. 맑은 개울물에 생으로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씻었다. 곤달비(곰취)를 깔고 그 위에다 참나물을 몇 줄기 얹었다. 밥을 손으로 떼서 놓고 그 위에 된장을 나뭇가지로 조금 놓은 다음 싸서 한 입 가득 먹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맛이었다. 60년 가까이 산 지금까지 먹어본 밥과 나물맛 중 단연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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