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엔딩>
어릴 때 내가 살던 고향에는 이맘때 쯤이면 복숭아꽃 살구꽃이 석양 속에 피어 있었다. 얕은 산에는 진달래꽃이 불타오르는 듯이 온산을 덮었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다. 마을길도 넓히고 초가지붕들은 슬레이트나 양철 지붕으로 바뀌었다. 멀쩡한 기와지붕마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꿔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새마을 진행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겨 마을 입구에 시멘트로 만든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 표지가 세워졌다.
아마 이때부터였으리라. 마을 어귀나 집과 집 사이, 개울가에 있던 복숭아나무 살구나무도 없어지기 시작했다. 돈 안 되는 감나무도 베어져 목재로 팔렸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러 이제 어딜 가나 벚꽃 천지다. 복숭아꽃 살구꽃은 과수원에만 열을 맞춰 멋없게 피어 있다.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이라고 꺼려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벚꽃을 좋아하는 것은 본래 우리 민족이었다고 한다. 백제가 멸망하고 그 귀족계층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그때 좋아하던 벚나무도 같이 가져가서 일본에서 벚꽃놀이를 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아무튼 우리나라 사람도 벚꽃은 엄청 좋아한다.
벚꽃은 안 좋아하기가 어렵다. 여름에 그늘이 생기고 가을에 단풍이 예쁘기도 하지만, 벚나무는 봄에 꽃 한 철 보기 위해 심는다. 동백도, 목련도, 장미도 벚꽃만큼 화사한 꽃송이와 꽃잎을 풍성하게 주지는 못한다. 날씨 좋은 날 활짝 핀 벚꽃 그늘 아래 있으면 들뜨고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다.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본능이리라. 꽃을 다른 용도로도 많이 쓰지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이 생물학적 본질에 맞다.
벚꽃의 완성은 떨어짐에 있다. 이제 막 피어나거나 활짝 피어있는 벚꽃도 아름답지만 꽃잎이 하나하나 눈처럼, 비처럼 날리는 모습은 가히 몽환적이다. 목련꽃은 시들어가면서 며칠을 붙어 매달린다. 동백꽃은 송이째로 떨어져 바닥에서 시들지 않고 하루 이틀 멀뚱거리며 쳐다본다. 벚꽃은 시들지도 않고 꽃송이에 붙어 있지도 않아 꽃잎 하나하나 표표(飄飄)히 떨어진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도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날린다.
떨어지는 벚꽃잎은 이별과 죽음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아무련 미련없이 시들지 않고 날리듯이 가볍게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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