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를 읽었다. 자전적 소설이라는데, 명상록이나 수상록에 가깝다. 명언이라 할 수 있는 문장들이 많다.
“사실 그 어느 것도 잃어버린 동료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친구들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함께한 그토록 많은 추억들, 함께 겪은 수많은 고된 시간들, 그토록 잦았던 다툼과 화해, 마음의 움직임, 그런 보물만큼 값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런 우정은 다시 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떡갈나무를 심어놓고 곧바로 그 그늘 아래 몸을 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헛된 일이다.”
“삶이란 게 그렇다. 처음 우리는 풍요로웠고 여러 해 동안 나무를 심었지만, 시간이 그 작업을 해체하고 나무를 베어내는 그런 시기가 온다. 동료들은 하나씩 우리에게서 자신의 그늘을 걷어낸다. 그리고 우리의 슬픔에는 늙어간다는 말 못할 회한이 서린다.”
“완벽함이란 더 이상 덧붙일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떼어낼 것이 없을 때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모든 것이 모순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창작을 할 수 있도록 빵을 주면 그는 잠을 자며,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물러지고, 너그러운 자가 부자가 되면 구두쇠가 된다.”
“도구에서 눈에 띄는 모든 장치가 조금씩 지워져서, 바닷물에 닳아 반질반질한 조약돌처럼 자연스러운 물체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계를 사용하면서 기계 그 자체는 차츰 잊힌다는 것은 그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가”
“우리들 모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가장 뜨거운 기쁨을 누렸던 적이 있다. 그 기쁨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가슴이 저릿저릿한 향수를 남겨주어, 우리가 한 고생이 그 기쁨을 안겨다주었다면 그 고생까지도 그리워하게 된다. 동료를 다시 만났을 때 우리 모두는 나쁜 추억들이 지닌 매력을 맛보았었다.”
“죽음이 사물의 질서에 속할 때, 프로방스 지방의 늙은 농부가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몫인 염소와 올리브나무들을 자식들에게 넘겨서 그 아들들이 다시 자신의 자식이 자식에게 전하도록 할 때, 그때의 죽음은 참으로 달콤하다. 농부의 가계에서는 사람이 완전히 죽지 않는다. 각각의 존재가 꼬투리처럼 터져 씨앗들을 내놓기 때문이다.”
바르크(본명 모하메드 벤 라우신)라는 흑인 노예를 사서 자유인으로 살게 놓아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자유인이 된 첫날, 바르크는 가슴이 벅차고 행복에 겨웠다. 남들과 똑같이 햇볕을 누리고 카폐의 정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권리를 누렸다. 바르크는 그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찬양하고 감탄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바르크는 보통 사람들 중 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바르크는 이제 무엇을 하든 어느 방향으로 가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자유는 씁쓸했다. 그 자유는 무엇보다도 얼마만큼이나 그가 세상과의 연관성이 없는가를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였을 때의 연관성과 구속이 모두 없어져 버린 것을 깨달았다.
바르크는 지나가는 아이의 뺨을 어루만진다. 그 아이는 미소를 짓는다. 그 아이의 미소 때문에 자신이 지상에서 좀 더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르크는 노점으로 가서 양 팔에 선물을 가득 안고 돌아온다. 아이들에게 장난감, 팔찌, 금실로 꿰맨 슬리퍼 등을 나눠준다. 바르크는 파산한다.
바르크는 자유로웠으므로 기본적인 재산, 사랑받을 권리, 어느 방향으로든 걷고, 노동으로 자신의 빵을 벌 권리가 있었다. 그는 사람들 틈에서의 한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고 사람들과 엮인 사람이 될 필요를 느꼈다.
주인공은 사막 위를 비행하다 지상과 충돌하여 정비사 프레보와 함께 조난을 당하고 구조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먹을 것과 마실 물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여러 날을 버틴다. 그냥 구조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매일 방향을 바꿔가며 걸어갔다가 오아시스나 등대가 보이지 않으면 파손된 비행기가 있는 데로 돌아오기를 반복한다. 날이 갈수록 허기와 목마름과 추위는 더해가지만 멈추지 않는다. 비행기 잔해가 있는 곳으로 돌아오는 것은 구조의 가능성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길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본다.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면, 길을 잃은 그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 지점에서 다시 가보지 않은 방향으로 길을 찾아봐야 한다. 새로운 길을 찾지 못했는데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는다면, 길을 잃기 전의 길도 모두 잃어버리는 미궁에 빠지기 때문이다.
(공백 포함 3,943자)
별별챌린지 8기 62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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