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적이란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신앙이란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바친 구세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다. 그는 사랑의 영웅이며, 권력 없는 영웅이다. 그는 힘을 사용하지 않았고, 지배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소유’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는 ‘존재’의 영웅, 남에게 주는 영웅, 나누어 갖는 영웅이었다. 기독교의 영웅은 순교자였다. 최고의 목표는 신 또는 동포를 위해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순교자는 그리스와 게르만의 영웅들로 대표되는 이교의 영웅들과 정반대이다. 그들 영웅들의 목표는 정복하고, 승리하고, 파괴하고, 강탈하는 것이며, 그들의 삶을 충족시키는 것은 자부심, 권력, 명성, 뛰어난 살인의 기량이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인간의 가치는 권력을 획득하고 고수하는 용기였다. 그들 영웅의 특징은 ‘소유’하고 착취하고, 강요하는 것이다.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역사는 교회로의 개종에도 불구하고 정복과 자만과 탐욕의 역사이며, 최고의 가치는 남들을 정복해서 착취하는 것이다. 이는 ‘남자다움’과 일치한다. 싸우고 정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성이고, 힘이 강하지 못한 사람은 약한 자이며 ‘남자답지 못한’ 자이다. 유럽의 역사는 정복·착취·권력·제압의 역사이다. 노예상인들, 인도의 지배자들, 인디언을 죽인 무리들, 중국인들에게 아편을 수입케 한 영국인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선동자들, 다음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무리들은 모두 마음속으로는 기독교도였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독교도였는데 지도자들만 탐욕스러운 이교도일까.
‘선진국’, ‘최강국’이 되기 위한 국민적 결의,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을 통해 드러나는 광적인 내셔널리즘은 과연 어떤 ‘영웅’을 선호하고 열광하는 것인가. 그리스도의 순교자적 영웅인가, 그리스와 게르만의 정복하고 제압하는 영웅인가.
진실과 현실이 어긋남에도 불구하고 유럽은, 미국은, 한국은 어울리지 않는 ‘기독교’를 왜 포기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규율을 잃고, 사회적 결합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종교적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굳게 믿는 사람들은 이 신앙을 ‘자기들을 대신하여’ 사랑해주는 예수로 만들 수 있다. 예수는 우상이 된다. 기독교 신자는 이교도적 영웅의 행위를 계속 해도, 대신 사랑해주는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는다. 기독교 신앙은 자신의 탐욕스러운 태도를 위장하는 데 손쉬운 구실이 된다. 사랑에 대한 신앙을 공언(公言)함으로써, 전혀 사랑이 없는 데 대한 무의식적인 죄악감에서 오는 고통을 어느 정도는 느끼지 않아도 된다.
기독교인 중에 기독교적인 사람도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기독교적인 사람도 있다. 한 국가를 지배하고 한 사회를 지도하는 사람들 중에 기독교적인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서
(공백 포함 1,375자)
별별챌린지 8기 64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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