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周易)』은 어렵다. 위편삼절(韋編三絶).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뜻으로, 책을 열심히 읽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 책이 주역이라고 한다. 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었다는 것은 어렵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공부를 잘 했다는 학자치고 주역에 손대지 않은 사람이 없다. 이 또한 어렵다는 증거가 된다. 물론 그만큼 심오하거나 가치 있는 진리를 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주역(周易)』은 왜 이해하기 어려울까. 일반적인 경서(經書)에 없는 괘상(卦象)이 있고, 괘사나 효사의 문장도 대화체의 서술도 아니고 객관적 진술도 아니고 논리적 주장도 아니다.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로 이해되지 않는 것이 더 많고, 한 괘 안에서 효사끼리 문장이 연결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괘사와 효사를 각각 분리된 하나의 점사로 보는 경우가 많다. 괘사를 설명하는 「단전」까지만 점사로써의 풀이이고, 괘사와 효사에 붙은 「상전」은 철학적·윤리적·정치적 의미이다. 「상전」은 괘상, 괘사, 효, 효사와 관련되는 맥락을 찾기 힘든 경우도 많다.
『주역(周易)』을 이해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는 상수학파이고, 다른 하나는 의리학파이다. 상수학파는 『주역』을 복서(卜筮)를 위한 책이라고 보고, 괘상(卦象)의 의미를 수(數)를 조작해내는 기술과 연관시켜 해석한다. 의리학파는 『주역』이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의도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의리학파는 『주역』의 천인성명지리(天人性命之理)를 밝히고자 한다. ‘천(天)’은 천기(天機)로 사람이 세상에서 존립하기 위하여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인(人)’은 인사로 존립의 안전을 위하여 사람이 살면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다. ‘성(性)’은 도덕적 품성을 지닌 인간이 이루고자하는 목표이다. ‘명(命)’은 성의 속성들이 구체적으로 발현한 것이다.
『주역(周易)』이 점서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다지 심오할 것도 없고 존중할 가치도 없다. 그렇다면 『주역』의 본질은 복서(卜筮)가 아니라 의리(義理)의 천명(闡明)에 있는가. 정약용은 일상적 차원과 심오한 차원 즉 상수학적 차원과 의리학적 차원이 공존하고 있다고 본다.
의리의 차원은 자연의 질서를 탐구함으로써 그 변화의 법칙을 징험(徵驗)하거나 입신(立身), 처세(處世), 처신(處身)의 도(道)를 알아내는 것이다. 상수의 차원은 복서의 차원으로 말·소·개·닭을 얻거나 잃어버리는 경우 등 평범한 일상사에 걸쳐져 있다.
정약용은 심오한 의미로 말한 것은 심오하게 해석하고, 평범한 취지에서 말한 것은 평범하게 해석해야 된다고 말한다. 『주역』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자는 것이다. 실제 이상으로 과장해서도 안 되고 실제 이하로 비하해서도 안 된다는 말이다.
(공백 포함 1,366자)
별별챌린지 8기 46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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