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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글쓰기/글쓰기로 자강불식하는 주역(두마리)

곤경

by 두마리 4 2024. 5. 11.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정말 그럴까. 살아있는 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는 죽은 경우다. 일상에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죽은 듯이 있으란 얘기다.

 

살다 보면 곤경이 닥친다. () 자처럼 나무가 우리에 갇힌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 주역의 곤괘(困卦䷮) 단전에서도 그 의미를 강함이 가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태괘(兌卦)는 두 개의 양()이 하나의 음()의 가렸고, 감괘(坎卦)는 하나의 양()이 위 아래의 음()으로 가려져 있다. 강함이라도 갇히고 가려지면 어렵다. 곤괘(困卦䷮)의 괘상을 보면 연못의 물이 빠진 곤경이다. 비가 너무 안 와서 연못의 물이 말랐을 수 있다. 또는 연못에 구멍이 생겨 물이 빠져버렸을 수 있다.

 

곤괘(困卦䷮)의 괘사를 보면 곤궁함은 형통하고 바르다. 왜 그럴까. 곤경은 몸과 마음을 괴롭고 힘들게 한다. 하지만 곤궁함은 몸과 마음, 정신을 분발하도록 만든다. 노력하고 힘써서 곤경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통하여 성장하고 발전한다. No pain no gain.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사람이 편한 것을 바라지만 편하기만 하면 육체와 정신도 무기력하고 느슨해진다.

 

곤궁함은 대인(大人), 군자(君子)의 자세로 대처해야 한다. 정도를 잃지 않아야 하고, 지조를 지켜며 곤경을 벗어나야 허물이 없다. 위기에서 인품이 드러난다. 곤궁한 처지에 있을 때야말로 남다른 품성과 자질이 검증될 수 있는 시기이다. 또 곤궁할 때는 남에게 신뢰를 받지 못할 때니, 말로써 곤경을 벗어나려 하면 더욱 궁색해진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실천으로 곤경을 벗어나야 한다.

 

삶이 궁핍해지면 의로움을 지키기 더 어렵다. 견위치명(見危致命).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곤궁함을 벗어나려면 먼저 그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안빈(安貧)할 수 있어야 한다. 또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한다. 뉘우치고 반성하며 소박하지만 정성을 다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공백 포함 1,044)

 

택수곤괘(澤水困卦䷮)

 

困 亨貞. 大人吉. 无咎. 有言不信.

곤경은 형통하고 올바를 수 있다. 대인이라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이 있으면 믿지 않는다.

彖曰 困 剛揜也. 險以說. 困而不失其所亨, 其唯君子乎.

단전에서 말했다. 곤경은 강함이 가려진 것이다. 위험한 상황이지만 기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곤경일지라도 그것이 형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잃지 않으니, 오직 군자일 것이다.

올바를 수 있다. 대인이라 길하다는 것은 강하면서도 중도를 이루기 때문이다.

말이 있으면 믿지 않는다는 것은 입을 숭상하면 곧 궁지에 몰리기 때문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연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괘의 모습이다. 군자는 이것을 본받아 천명을 다하여 뜻을 수행한다.

 

초육효는 엉덩이가 마른 나무 아래서 곤란한 상황이니,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서 3년이 지나도 볼 수 없다. .

상전에서 말했다.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은 어두워서 밝지 못한 것이다.

 

구이효는 술과 밥에 곤궁하지만 붉은 옷이 장차 오리니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고, 가면 흉하니 탓할 곳이 없다.

상전에서 말했다. 술과 밥에 곤란한 것은 중도를 지키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육삼효는 돌에 치여 곤란하고 가시나무에 찔려 앉아 있다.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니 흉하다.

상전에서 말했다. 가시나무에 찔려 앉아 있는 것은 강함을 탔기 때문이고, 그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보지 못하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다.

 

구사효는 오기를 천천히 하는 것은 쇠수레에 곤란을 느끼기 때문이니, 부끄럽지만, 결말이 있을 것이다.

상전에서 말했다. 오기를 천천히 하는 것은 뜻이 아래에 있는 것이니, 지위가 합당하지 않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구오효는 코를 베이고 발을 베이니, 자주색 옷에 곤란하지만 서서히 기쁨이 있으리니,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이롭다.

상전에서 말했다. 코를 베이고 발을 베이는 것은 뜻을 얻지 못한 것이고, 서서히 기쁨이 있는 것은 중직하기 때문이고, 제사를 드리는 것은 복을 받는 것이다.

 

상육효는 칡덩굴과 위태로운 곳에서 곤란을 겪으니, 움직일 때마다 후회가 있을 것이라 하면서 뉘우치는 마음이 있으면, 어떤 일을 하든 길하다.

상전에서 말했다. 칡덩굴에서 곤란을 겪는 것은 처신이 합당하지 않은 것이고, 움직일 때마다 후회가 있을 것이라 함은 길하게 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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