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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글쓰기/글쓰기로 자강불식하는 주역(두마리)

시작과 끝

by 두마리 4 2024. 6. 13.

시작과 끝, 그리고 중간의 과정. 무엇이 더 중요할까. 모두 다 중요하다. 시작, 중간의 과정, , 모두 잘하면 좋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하는 시종일관(始終一貫)이라는 말이 있다. 주역의 중천건괘(重天乾卦䷀)와 같다. 여섯 효가 모두 양()이다. 강건하고 강건하다. 지극히 굳건하다. 시종일관 강건하기만 해서 좋을까. 인간은 그렇게 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반드시 좋기만 한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끝난 프랑스오픈 결승전이 생각난다. 알카라스와 즈베레프가 맞붙었다. 즈베레프가 첫세트를 이겼다. 즈베레프는 시종일관 강하게 쳤다. 변화없이 강하게만 치면 쉽게 지친다. 알카라스는 변화를 많이 줬다. 강하게 쳤다가 약하게 쳤다가 짧게 쳤다가 길게 쳤다가 빠르게 쳤다가 느리게 쳤다 하는 식으로 변화를 주어 즈베레프의 일관성을 흔들었다. 알카라스가 즈베레프와 같이 강하게만 쳤다면 졌을지 모른다. 시종일관 강건함을 유지할 수 있으면서 부드럽고 약하기도 한 변화를 주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시작과 끝은 미흡하나 중간 과정은 튼실한 경우가 있다. 택풍대과괘(澤風大過卦䷛)와 흡사하다. 대과(大過)크게 지나침이다. 대과괘 시작과 끝이 음효(陰爻)이고 중간의 효가 모두 양()이다. 괘사가 동요(棟橈) 利有攸往(리유유왕) ()’이다. ‘동요(棟橈)’는 마룻대(대들보)가 휘다는 뜻이다. 양쪽에 걸리는 부분은 약한데 중간이 무거운 괘상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런 상황이라도 가는 바가 있음이 이롭고 형통하다고 말한다. 중간 과정을 성실하게 하면 시작과 끝이 약하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다.

 

뢰산소과괘(雷山小過卦䷽)도 중간의 1/3만 양효이고 처음의 둘과 끝의 둘이 음효이다. 처음과 끝은 부드럽고 약한 음()이지만 중간의 양효(陽爻)가 둘 뿐이라 대과괘에 비해서는 가볍다. 소과(小過)작은 지나침이다. 소과괘의 괘사는 亨利貞(형리정) 可小事不可大事(가소사불가대사) 飛鳥遺之音(비조유지음) 不宜上宜下(불의상의하) 대길(大吉)’이다. 형통하고 바르게 하면 이롭다. 작은 일은 괜찮고 큰일은 하면 안 된다. 나는 새가 울음 소리를 남길 때는 위로 가면 마땅하지 않고 아래로 내려와야 마땅하고 크게 길하다. 소과괘 괘사 또한 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점이 흥미롭다. 소과괘(過卦䷽)는 중간에 강건한 두 개의 양효가 있고, 양쪽에 유순한 두 개의 음효가 있어 마치 새가 날갯짓을 하는 모양이다. 하괘는 그침의 기운이고 상괘는 움직임의 기운이다. 일의 처음, 중간, 끝이 있을 때 중간만 튼실하다면, 욕심을 덜어내고 줄여야 길하다.

 

산뢰이괘(山雷頤卦䷚)의 괘상은 처음과 끝은 강건하나 중간이 유약한 모습이다. 이런 경우는 어떨까. 괘사가 정길(貞吉) 觀頤(관이) 自求口實(자구구실)’이다. 바르게 하면 길하다. 아래턱과 위턱을 보며 입으로 먹을 음식을 스스로 구한다. 이괘(頤卦䷚) 역시 괘이름과 괘사에서 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턱과 턱 사이 즉 입의 모양이고, 그 입모양을 보면서 그 사이로 씹어 먹을 음식을 스스로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괘는 양생(養生)과 수양(修養)을 의미한다. 중간이 약한데 끝이 좋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끝이 제대로 좋으려면 약한 중간 과정을 마지막에라도 보완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풍택중부괘(風澤中孚卦䷼)의 괘상은 가운데 유순한 두 개의 음효가 있고, 바깥 양쪽에 각각 강건한 두 개의 양효가 있다. 내면은 부드럽고 외면은 굳센 모습이다. 중간 과정은 약하지만 시작과 끝이 튼튼한 모양이다. 큰 내를 건너서 이로울 수 있는 국면이다.

 

주역에는 끝을 강조한 말들이 많이 나온다. 지산겸괘(地山謙卦䷎)의 괘사는 군자유종(君子有終)이다. 군자는 끝까지 겸손할 수 있고, 겸손해야 끝마침이 있다는 말이다. 중천건괘의 문언전에 지종종지(知終終之)라는 말이 나온다. 끝을 알고 끝낸다는 말이다. 이밖에도 마침내 길하다는 종길(終吉)’이란 말은 많이 나온다. 유종지미(有終之美)라는 말이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도 있다. 왜 유독 시작이나 중간 과정보다 끝을 더 강조할까. 끝은 결과와 성과이기 때문이리라. 마무리를 잘 해야 시작이나 중간 과정의 일들이 허사가 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좋은 끝을 맺는다는 것은 목표한 대로 끝까지 했다는 것이고 그것이 제일 어렵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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