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영화 ‘파묘(破墓)’를 봤다. 파묘(破墓)는 옮기거나 고쳐 묻기 위하여 무덤을 파내는 것이다. 무덤이 잘못되었으니 옮기고 고쳐 묻는 것이다. 파묘는 바르지 않는 것을 바르게 하는 것 중의 하나다.
종교는 달라도 묘(墓)는 대부분의 문화마다 있다. 사람들은 묘(墓)를 왜 만들까. 죽은 뒤에도 산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풍수(風水) 이론에 따르면 동기감응(同氣感應) 또는 동기조응(同氣照應)으로 인한 발복(發福)이다. 죽은 조상과 후손은 같은 기운으로 감응하기 때문에 명당(明堂)을 골라 조상의 무덤을 써야 후손도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주역(周易) 건문언전(乾文言傳)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한다는 동성상응(同聲相應)이 나온다. 또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는 동기상구(同聲相應)라는 말이 나온다. 설괘전(說卦傳)에는 산택통기(山澤通氣)라는 말이 나온다. 산과 못은 서로 기운이 통한다는 뜻이다. 선천팔괘에서 산의 간괘(艮卦☶)와 못의 태괘(兌卦☱)는 서로 대응한다. 또 산(山)은 양(陽)으로 소남(少男)이고, 못[택(澤)]은 음(陰)으로 소녀(少女)를 상징한다. 우뚝 솟은 산과 물을 담은 못은 그 형상이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택산함괘(澤山咸卦䷞)는 감응, 남녀 교합을 상징한다. 젊은 남녀의 기운은 서로 감응하는 바가 있다.
주역(周易)에서 풍수이론을 뿌리를 볼 수 있다. 같은 기운이 호응하고 상통하는 것은 만물의 원리이다. 물은 젖은 데로 흐르고, 불은 마른 데로 나아간다. 죽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리고,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귄다.
영화 ‘파묘’는 가족 중에 이상한 병이 생기는 원인이 조상의 묘 탓이라고 보고 파묘를 하는 과정에 생기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조상의 묫자리가 후손의 삶에 영향을 미치든 안 미치든 조상이 후손의 삶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고, 그 부모는 그 조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는다. 뿐만 아니라 부모가 가진 재산이나 문화적 환경에 따라 양육, 사회적 성공이나 재산 상속까지 달라진다.
의롭지 않게 형성된 조상의 자산으로 교육받고 그 재산을 상속을 받는다면, 그 조상의 죄 또한 그 자손과 무관할 수 없다. 영화 ‘파묘’는 친일(親日)의 댓가로 그 자손들이 현재 부유하게 살고 있다면 그 자손들의 삶은 정당한 것일까라는 의문을 바탕에 깔고 있다. 물론 자손의 경우, 자기 의지로 선택할 수 없이 주어진 부모나 조상의 유산에 대한 책임이나 부채를 묻기 어려운 면도 있다.
영화는 친일한 집안의 파묘를 통해 우리나라가 친일을 청산하지 못한 문제가 여전히 현재 진행행으로 계속되고 있음도 보여준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은 지배층을 형성하여 우리나라의 운명을 좌우하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영화 ‘파묘’를 보면 견리사의(見利思義)가 떠올랐다. 이익을 보면 옳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주역괘에도 오행(五行)과 오상(五常)을 붙인다. 원형이정(元亨利貞) 4덕의 이(利)는 태택궁(兌澤宮☱)이다. 오행으로는 금(金)이고, 오상(五常)은 의(義)다. 방향은 서방(西方), 계절로는 가을이다. 가을 되어야 곡식이 영글고 수확하여 이로움이 생긴다. 이로움과 의로움을 짝지어놓은 것이 절묘하다.
‘이(利)’는 벼 화(禾)자와 칼 도(刂)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벼를 베려면 칼이 있어야 하고 그 칼은 날카로워야 한다. ‘의(義)’는 양 양(羊)자와 나 아(我)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내 몫의 양, 양 머리를 창에 꽂은 권위의 상징, 내가 양처럼 순하게 가짊 등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익과 옳음.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들어낸 이익을 분배할 때, 그 분배의 정당성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일에 기여한 사람들의 역할, 능력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 그 몫을 결정할 수 있는 힘을 모두가 똑같이 가진 것도 아니다. 현실 속의 이익과 정의는 그것을 결정할 수 있는 힘에 따라 늘 유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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