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섬』(장 그르니에) 중에서
내가 살아온 동네에서 계속 산다면 나를 아는 가족과 친척, 동료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곳에서는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망도 버리기가 어렵다. 나를 아는 사람이 많고 내가 가진 것으로 부양해야 할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또 이미 수십 년을 살아온 익숙한 도시에서는 겸손하게 마음을 비우는 것도 힘들다. 남루하게 사는 것도 혁명적인 결단과 용기가 없으며 불가능하다.
혼자서 낯선 도시에 간다면 눈치볼 것 없어서 느끼는 자유로움도 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생존하려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말도 통하지 않을 만큼 낯선 도시라면 겸허함, 간절함, 모든 능력을 동원한 성실함이 있어야 밥벌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혼자서 낯선 도시에 갔는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노숙자나 되거나 거지처럼 구걸을 해서 연명할까. 그곳에서 사회취약계층이 되어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으면서 살 길을 택할까. 가진 것 없더라도 몸과 영혼이 멀쩡하다면 낯설지만 그 도시에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기본적인 생존에 영향을 주는 남루함이 아니라면 개의치 않을 것이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한다는 것을 꿈꾼다는 것은 혁명을 바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은 욕망이다. 지금 살고 있는 자신과 사회에서 느끼는 불필요함과 겉치레를 모조리 벗어버리고 싶은 또다른 꿈이다. 낯선 도시에 가더라도 그 도시 나름의 관습과 문화가 또 다시 구속을 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붙어있는 온갖 가식과 생존에 불필요한 사치는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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